1부 · 3장 · 4화
4화. 살아 본 적 없는 어린 시절
잔영기록자 · 한국어
벨로섬을 실은 첫물호는 오르메의 부두 바깥에 떠 있었다.
도린은 누구도 새 부두에 밧줄을 걸지 못하게 했다. 오래 써서 거칠어진 난간 고리와 돛대 밑 고리에 정박 줄을 세 번씩 감고, 선원들에게는 줄과 자기 이름을 함께 말하게 했다. 배 안으로 올라온 벨로섬 주민들은 젖은 담요를 둘러쓰고 서로의 어깨를 세고 있었다. 마온은 마지막까지 갑판 가장자리에서 자기 섬 쪽을 보았다. 뿌리가 잠긴 곳은 물 위에서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손에 쥔 뿌리칼 끝은 자꾸 중앙을 가리켰다.
리아는 지도통을 열고 새로 묶은 물매듭을 난간에 늘어놓았다. 섬이 끌려온 뒤의 흐름은 아침과 전혀 달랐다. 푸른 줄은 오르메 쪽으로 팽팽해졌고, 갈색 줄은 아직 멀리 있어야 할 벨로섬의 흙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납추를 한 번 내렸다가, 줄이 돌에 닿기 전 갑자기 가벼워진 자리를 작은 종이에 적었다. 고쳐야 할 선이 늘어날수록 리아의 손은 더 빨라졌다.
“그 지도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온이 물었다. 목소리는 리아를 탓한다기보다, 믿을 자리가 남아 있는지 묻는 소리였다.
“오늘도 틀릴 겁니다.” 리아가 말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재요. 틀린 자리를 지우지 않고 남기면, 적어도 섬이 어디서부터 끌렸는지는 알 수 있어요.”
마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줄 하나를 리아가 말한 위치에 묶어 주었다. 매듭은 조금 삐뚤었지만, 그 삐뚤어짐까지 지금 손이 한 일이었다.
세른은 부두 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어제 그가 흩뜨린 납추와 금속 조각은 물가에 남아 있었지만, 오르메 아래의 뿌리 골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휴대용 좌표 결속부를 손바닥 안에서 닫았다. 아주 작은 금속 조각들이 서로 맞닿지 않게 간격을 지키는 물건 이었다.
“빈 닻이 사람 쪽으로 더 가까워졌습니다.” 세른이 말했다. “섬만 당기던 때와 다릅니다.”
네아가 흠집 난 집게 세 개를 손가락 사이에서 돌렸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요?”
“모릅니다. 다만 각자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쪽으로 밀 겁니다.”
그 말이 끝난 직후, 내 손목 안쪽이 뜨겁게 당겼다.
흉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손을 내려다보자, 그 자리에 매끈한 피부가 먼저 보였다. 나는 물에 젖은 갑판이 아니라 마른 실습실 바닥을 밟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바람에 흔들린 수피가 유리창을 긁었고, 책상 위에는 한 번도 찢기지 않은 기록지가 놓여 있었다. 내가 마지막 배열을 바로잡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누군가가 놀라서 내 이름을 부르는 대신, 지도교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식 호명자의 실습 통과를 알렸다.
그 뒤의 날들이 너무 쉽게 이어졌다. 내가 할 일은 모두 제시간에 끝났고, 실수한 동료의 보고서를 대신 고쳐 주느라 늦게까지 남을 일도 없었다. 낯선 항로의 조사 의뢰가 책상 위에 차례로 쌓였고, 나는 사고를 낸 견습이라는 눈길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 삶의 나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의 배에서 내려가면 된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오르메 중앙에는 그런 나에게 맞는 조사실이 있을 것이다. 벨로섬이 어디에 있든, 첫물호가 어떤 줄에 묶였든, 정식 호명자는 더 큰 일을 위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 발이 난간 쪽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손바닥이 젖은 나무에 닿았다. 나무 틈의 송진이 흉터 위에 들러붙으며 살을 당겼다. 아픔이 먼저 돌아왔다. 그다음에야 네아가 내 쪽으로 뻗은 손과, 도린이 조타륜에서 고개를 든 얼굴이 보였다.
나는 손목을 잡았다. 흉터 없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삶에서는 누군가가 다치지 않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던 일들이 있었다. 그 바람 자체를 거짓이라고 하면, 지금도 그 일을 기억하는 내가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바람이 난간 너머로 가라고 내 발을 고르는 순간에는, 다른 답이 필요했다.
“네아와 도린에게 약속했어.” 나는 내게 먼저 말했다. “같이 확인하고, 같이 돌아오기로.”
그 약속은 실습실에는 없었다. 실패 뒤에야 생긴 약속이었다. 그래서 손목의 흉터와 함께 이 배에만 있었다. 나는 난간에서 손을 떼고, 도린이 묶은 정박 줄 쪽으로 돌아섰다.
갑판 반대편에서 금속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네아가 집게 하나를 놓친 소리였다. 그녀는 몸을 굽혀 집게를 주웠지만, 손끝은 지금보다 훨씬 깨끗한 서가를 만지고 있는 듯 멈춰 있었다.
그녀가 보는 곳은 오르메의 집이 아니었다. 온갖 보존 기록이 벽을 따라 정리된 넓은 기록실이었다. 젖거나 찢어진 장부도, 잘못 분류되어 다시 꺼내야 할 상자도 없었다. 어린 네아는 책상마다 놓인 봉인을 확인하며 한 장도 지우지 않았다. 그녀가 손댄 기록은 모두 정확했고, 누구도 늦게 와서 자기가 잃어버린 이름을 찾지 못했다고 울지 않았다.
그 기억 속의 네아는 집게를 흠집 내지 않았다. 검은 퇴비를 손에 묻히지도 않았다. 침묵시켜야 할 배열을 잘못 고르는 일도 없었으므로, 그녀는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 기록관이 지금의 네아에게 말했다. 지운 적 없는 사람이면, 이 섬의 불완전한 기록도 고쳐 완성해야 한다고. 오르메가 원하는 순서대로 사람들을 한곳에 묶으면, 누락된 기록도 더는 생기지 않을 거라고.
네아는 집게를 오르메 쪽 뿌리 골격에 겨눴다. 그 손이 닿으면 현재의 물매듭을 잘라 완벽한 지도 아래로 밀어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아.” 내가 불렀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정확하게 보관한 삶이 있어요. 아무 기록도 잘못 지우지 않은 삶이.”
“그걸 원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야.”
내가 말하자, 네아의 손가락이 잠시 멎었다.
“하지만 지금은 리아의 지도까지 지우려 해.”
그녀는 집게 끝을 내려다보았다. 무광 금속에는 오래된 흠집이 세 줄 있었다. 하나는 누군가의 기록 상자에서 빼낸 못에 긁힌 자리, 하나는 물에 젖은 수피를 집다 남은 자리, 마지막 하나는 네아 자신도 어느 날 무엇을 급히 고치려다 낸 자리였다. 흠집은 깨끗한 기억보다 못나 보였지만, 그 집게가 무엇을 잘못 집었고 다음에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남기고 있었다.
네아는 집게를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오히려 리아의 지도통 옆에 검은 퇴비를 아주 얇게 펼쳤다. 글자도 표식도 아닌, 젖은 종이와 마른 종이 사이에 물성이 다른 길을 만드는 배열이었다.
“기억을 없애는 건 아니에요.” 네아가 낮게 말했다. “다음 동작만, 여기서 멈추게 하죠.”
그녀는 퇴비 위에 집게 세 개를 나란히 놓지 않았다. 첫 번째 집게는 리아의 오늘 지도 옆, 두 번째는 어제 고쳐 쓴 종이 옆, 마지막 하나는 아직 펼치지 않은 빈 종이 옆에 따로 두었다. 정확한 기록관의 기억은 그 셋을 한 줄로 맞추고 싶어 했다. 잘못이 없었다면 종이도 하나면 되고, 고친 이유도 남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네아는 각 집게의 흠집이 서로 다른 날에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흠집은 보기 싫은 흔적이었지만, 한 번 놓친 것을 다음번에 덜 놓치게 하는 간격이었다.
“제가 지운 기록 중에는 다시 찾지 못한 것도 있어요.” 네아가 말했다. “그걸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고요.”
그녀는 빈 종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지금 지도를 지우면, 그건 실수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리아가 오늘 다시 잰 일을 없애는 거예요.”
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전날 해초 더미 때문에 고친 선이 있는 종이를 펼쳐, 네아의 집게에서 가장 멀리 두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완벽한 기록보다 불편한 수정이 먼저 놓였다.
그때 선미 쪽에서 도린의 고함이 들렸다.
선원들이 여섯 번째 접합부 주변에 몰려 있었다. 그 자리는 첫물호의 함수 아래에서 도린이 오래 미뤄 둔 빈 자리였다. 배의 나무는 계절마다 조금씩 비틀렸고, 그래서 새 부품을 넣을 때는 선체의 지금 굴곡을 재야 했다. 그런데 오르메 쪽 뿌리에서 희고 매끈한 목재 조각 하나가 밀려 나와, 이미 그 자리에 맞춰지는 중이었다.
목재에는 첫물호가 겪은 파도 자국도, 선원들이 덧댄 송진 냄새도 없었다. 모든 배에 맞을 수 있을 만큼 반듯한 표준 부품이었다.
“선장님, 이게 더 낫지 않습니까?” 선원 하나가 말했다. 그의 눈은 멀리 완벽한 항구를 보고 있었다. “이제 흔들리지 않을 텐데요.”
도린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왼손 붕대 아래의 상처가 다시 아픈 듯 손등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보는 기억은 더 오래된 항구였다. 도린은 거기서 한 번도 줄에 손을 베지 않았고, 정박 날짜를 미루지 않았고, 모든 선원이 제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선착장에는 고장 난 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늙은 선장이 되어도 같은 배를 타고, 누구의 이름도 잊지 않았다.
그 항구의 도린은 표준 부품을 망설이지 않고 받아 들었다. 맞지 않는 것은 배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대였으니, 배가 그 기대에 맞춰지면 된다고 믿었다.
현실의 도린이 손을 뻗었다. 선원들은 그가 부품을 고정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는 부품과 선체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멈췄다. 매끈한 목재가 왼손의 붕대를 눌렀고, 그 아래 아문 살이 날카롭게 저렸다.
“이 배는 아직 여기랑 맞지 않습니다.” 도린이 말했다.
“비어 있잖아요.”
“비어 있다고 아무거나 넣는 게 아니야.”
그는 선원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았다. “이 자리는 우리 셋이 지난달에 덧댄 자리다. 누가 송진을 데웠고, 누가 물을 퍼냈고, 누가 줄을 당기다 손을 다쳤는지 배가 다 기억하고 있어. 완벽한 부품이면 그걸 못 견뎌.”
그는 말끝을 낮췄다. 완벽한 항구에서 오래 산 선장의 기억은 여전히 그의 어깨 뒤에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손이 베이기 전에 줄이 풀렸고, 늦게 돌아오는 배는 없었다. 도린은 그 항구에서 한 사람도 잃지 않는 선장이었다. 그런 삶을 보고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척하는 것은, 그 기억을 믿고 잠시 편안해진 선원들에게도 공정하지 않았다.
“나도 그 부두가 좋았다.” 도린이 선원들에게 말했다. “거기서 나는 늙어도 같은 사람들 이름을 불렀어. 너희가 기다리던 사람을 제시간에 데려왔고.”
선원들의 손이 다시 목재 위에서 굳었다. 도린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우리가 처음 함께 탄 배야. 아직 너희가 어느 줄을 더 잘 당기는지, 어느 날 멀미하는지, 누구에게 물을 먼저 건네는지도 다 배우는 중이고. 그걸 다 배운 뒤에도 이 부품이 맞으면 그때 넣자. 오늘의 배를 모른 채 맞춘 배는, 우리를 어디에도 데려다주지 못해.”
오르메의 힘이 접합부를 더 밀어 넣었다. 선원 둘이 무의식중에 목재를 받쳤다. 그들의 팔에는 같은 항구에서 늙어 가는 삶의 감각이 걸려 있었다. 도린은 그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한 사람에게는 줄을, 다른 사람에게는 송진 통을 건넸다.
“지금 배가 어디로 기우는지 봐. 내가 말한 쪽을 당기지 말고, 네 손에 걸리는 쪽을 말해.”
선원 하나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좌현이요. 물이 안쪽으로 밀려요.”
다른 선원은 송진 통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이 부품을 넣으면 여기 틈이 떠요.”
말이 현재의 감촉을 얻자, 손들은 표준 부품을 받치던 힘을 조금 놓았다. 하지만 목재는 스스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완성된 항구의 다음 동작이 선원들의 팔을 다시 그쪽으로 이끌었다. 접합부가 반쯤 잠긴 채 배가 삐걱거렸다.
“내가 막을게요.” 나는 말했다.
나는 물을 한데 모아 목재를 밀어낼 수 없었다. 물은 지금 선체 아래의 깊이와 흐름을 가질 뿐이었다. 리아가 묶은 물매듭을 보며, 나는 첫물호가 오늘 이 자리에 뜨는 무게를 호명했다. 선체가 기울어 온 방향과 줄이 버틴 방향이 접합부에 전달됐다. 물의 압력은 표준 부품을 공격하지 않고, 그것이 배의 현재 굴곡과 어긋난 자리를 드러냈다.
네아는 그 틈에 집게를 넣었다. 집게는 목재를 뽑지 않았다. 오르메의 기억이 선원들 손목에 건네던 다음 동작, ‘밀어 넣어라’라는 방향만 퇴비와 수피 사이에 가라앉혔다. 선원들은 완벽한 항구를 잊지 않았다. 다만 그 항구를 위해 지금 손을 움직여야 한다는 당김에서 잠시 벗어났다.
도린이 둘의 손을 잡아 접합부에서 떼었다. “그 항구가 좋았던 건 알아. 나도 봤어. 그런데 이 배는 너희 손으로 여기까지 왔다.”
선원들은 숨을 몰아쉬었다. 표준 부품이 반쯤 물러났다.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고, 여섯 번째 접합부에는 희고 반듯한 모서리가 남았다. 첫물호가 잃지 않은 것은 배의 틈만이 아니었다. 선원들이 함께 살핀 그 틈의 책임도 남아 있었다.
한참 동안 누구도 다시 오르메 항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젊은 선원이 송진을 데울 그릇을 찾았고, 다른 선원은 물통이 비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도린은 왼손을 억지로 펴지 않았다. 붕대 안쪽이 저릴 때마다 오른손으로 조타륜의 오래된 흠집을 짚고, 아픈 손이 현재 배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네아는 선원들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퇴비의 결을 살폈다. 기억은 여전히 부두 냄새와 완벽한 항구를 건넸지만, 누구의 발도 그 기억 하나만 따라 걷지는 않았다.
세른은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좌표 결속부를 다시 열었다. 금속 조각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좁아지고 있었다.
“빈 닻이 다음에는 더 깊이 고정하려 할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 말에 오르메 중앙의 뿌리 골격이 낮게 울렸다. 물 아래 어딘가에서 닫힌 봉인과 비슷한 울림이 대답했다. 내가 보관해 온 첫 룬 파편이, 검은 퇴비와 수피와 열린 고리 사이에서 한 번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첫물호의 여섯 번째 접합부에서는, 우리 배에 맞지 않는 표준 부품이 다시 아주 천천히 자리로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