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3장 · 5화
5화. 하나뿐인 고향의 지도
잔영기록자 · 한국어
첫물호의 여섯 번째 접합부는 한참 동안 더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도린은 선원 둘과 번갈아 그 자리를 지켰다. 희고 반듯한 목재의 가장자리는 선체에 반쯤 물린 채였고, 손으로 건드리면 마른 소리가 났다. 첫물호의 다른 나무가 가진 송진 냄새와 젖었다 마른 결은 그 부품에 없었다. 도린은 빈 틈에 얇은 수피 조각을 대고, 기울기가 바뀔 때마다 그 조각이 어느 쪽으로 눌리는지 확인했다.
“완전히 빼낼 수는 없습니까?” 리아가 물었다.
“지금 빼면 선체가 더 벌어져.” 도린은 수피의 눌린 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먼저 이 배가 오늘 어떤 배인지 끝까지 재야 해.”
그 말은 접합부만 가리키지 않는 듯했다. 리아는 자기 지도통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어제 한 번 꺾인 물매듭 옆에는, 새로 묶은 매듭이 또 하나 늘었다.
오르메는 더는 부두 하나의 크기가 아니었다. 중앙의 뿌리 골격에서 뻗은 가느다란 결이 물 아래로 퍼져, 멀리 있던 섬들의 거리추를 하나씩 당기고 있었다. 납추는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 모두 같은 방향으로 끌렸다. 물매듭도 제각기 다른 흐름을 보여 주지 못하고 중앙을 향해 팽팽해졌다.
마온은 난간 밖으로 줄을 내리며 이를 악물었다. “벨로섬의 우물 자리가 또 움직였어요. 집이 있던 쪽보다 중앙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가까워진 게 아니라, 가까워지도록 묶인 겁니다.” 리아가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친 뒤 종이를 넓게 폈다. 한쪽에는 오르메에서 찾은 완벽한 도면이, 다른 쪽에는 그가 날마다 고쳐 온 현재 지도가 있었다. 완벽한 도면의 섬들은 중앙을 둘러 같은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물길은 매끄럽고, 어느 배도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현재 지도에는 지워지지 않은 실수들이 많았다. 해초 더미를 바닥으로 읽었다가 고친 선, 비스듬한 측량선 때문에 납추 길이를 바꾼 수치, 비가 온 뒤 수림섬 그림자가 예상보다 길어져 덧그은 경로. 그 흔적들은 보기에는 지저분했지만, 섬들이 실제로 움직여 왔다는 기록이었다.
“오르메 지도에는 어제와 오늘이 없어요.” 리아가 말했다. “오차도, 제가 잘못 읽은 자리도, 다시 잰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 봐도 하나의 고향으로 보이죠.”
세른이 그 두 종이 앞에 섰다. 그의 얼굴은 지난날보다 더 지쳐 보였지만, 완벽한 도면을 보는 눈에는 오래 익힌 길을 보는 사람의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그 지도가 처음 떠오른 날은 조사 중이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첫 룬 흔적을 찾으려고 미레아 바깥 뿌리 경계를 더듬었죠. 뿌리 골격은 나무가 아니라, 여러 섬의 뿌리가 버텨 온 방향을 남긴 뼈대였습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중앙을 향해 눌린 거리의 무게와, 매듭으로 묶이지 못한 물의 결을 보았습니다.”
그는 망토 안주머니에서 닳은 납추 하나를 꺼냈다. 표면에는 오래 물에 잠겼던 흔적도, 어느 섬의 표식도 없었다. 다만 한쪽이 다른 쪽보다 조금 더 무거웠다.
“그날 이 납추를 들자, 내가 살지 않은 집의 바닥이 손에 닿았습니다. 작은 식탁, 젖은 신발을 말리던 자리, 누군가가 늦게 돌아온 나를 위해 남겨 둔 국. 나는 오르메의 아들이었고, 형제와 같은 방을 썼고, 가족은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가 말하는 집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가족이 물통을 누가 씻을지로 낮게 다투고, 누군가는 잘 마르지 않은 옷을 화덕 곁으로 옮겼다. 세른은 그 평범함을 잃어버린 물건처럼 기억했다. 조사원으로 떠나기 전 누이가 신발 끈을 다시 묶어 주던 손, 늦게 돌아온 그에게 아무 말 없이 밥을 더 주던 얼굴. 그는 그 장면에서 영웅도,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돌아와도 되는 사람이었다.
세른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납추를 꼭 쥐었다.
“눈을 뜨면 그 집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안도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평생 어느 섬에도 돌아갈 곳이 없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을 알았다고 느꼈습니다. 가능성의 기억이 나를 속였다고 말하면 간단하겠죠. 하지만 그 안에서 가족을 사랑한 감정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마온이 짧게 웃었다. 웃음에는 기쁨이 없었다.
“그래서 내 가족의 집을 당겼습니까?”
세른은 바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군도가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도 봤습니다. 벨로섬은 뿌리병이 오면 밭을 접어야 하고, 북쪽 섬은 해류가 틀어질 때마다 약을 실은 배를 놓칩니다. 섬마다 따로 견디는 방식으로는, 다음 흉년을 넘기지 못할 곳이 있습니다. 오르메는 모두가 돌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고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고향에는 아픈 사람이 없습니까?” 마온이 물었다. “우물 고치는 날도, 밭을 갈아 엎는 날도, 아이가 열이 오래가 물을 데우는 날도?”
세른의 입술이 굳었다.
“없었을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래서 더 붙들고 싶었습니다.”
“그건 가족이 아니라, 당신이 아프지 않을 자리를 붙드는 거예요.” 마온이 말했다.
세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마온의 말은 가능성 기억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감정 때문에 세른이 실제로 위로받았다는 것도, 그가 그래서 쉽게 오르메를 놓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가족을 사랑했다는 감정과, 현실의 가족에게서 집을 빼앗아도 된다는 결론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맞습니다.” 세른이 말했다. “그래도 나는 이대로 두면 군도가 더 많은 집을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온은 물 아래로 끌려가는 벨로섬 쪽을 보았다. 그가 말한 현실은 아름답지 않았다. 뿌리병이 오면 집 바닥까지 걷어 내야 했고, 흉년에는 저장한 씨앗을 나눠 먹어야 했다. 그래도 마온의 가족은 그 불편한 날들을 함께 견뎠다. 그 기억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누가 물을 길었는지와 누가 먼저 잠들었는지까지 이어져 있었다.
“저도 하나의 고향이 필요하다는 말은 압니다.” 마온이 말했다. “하지만 그 고향이 내가 오늘 붙든 손을 대신 고르면 안 됩니다.”
세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좌표 결속부를 꺼내 중앙의 뿌리 골격 쪽으로 향하게 했다. 금속 조각 사이의 빈 간격이 전보다 좁았다.
그 순간 오르메의 완벽한 도면이 바람도 없이 들렸다.
종이 위 선들이 빛나거나 글자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림 속 거리추들이 실제 물 아래의 납추와 같은 무게로 내려앉은 듯했다. 첫물호 난간에 걸린 납추들이 한꺼번에 중앙으로 기울었다. 물매듭은 묶인 줄마다 제 모양을 잃고, 모두 같은 팽팽함으로 당겨졌다. 멀리 있던 작은 배 두 척이 서로 다른 물길을 타다가, 갑자기 같은 수로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지도 통을 닫아요!” 내가 외쳤다.
리아는 완벽한 도면을 덮으려 했지만, 종이 가장자리가 손을 밀어냈다. 그 지도는 한 번 정한 간격을 고치지 않았다. 오르메의 뿌리 골격도 그 간격을 따라 섬과 배를 중앙으로 옮기려 했다. 물은 한곳에 갇히지 않고 흐를 때만 지금의 깊이를 지키는데, 지도 잔영은 흐름의 서로 다른 거리를 모두 같은 길이로 만들고 있었다.
도린이 조타륜을 잡았다. “저 배들이 만나기 전에 길을 나눠야 해!”
그는 여섯 번째 접합부를 한 번 보았다. 표준 부품은 움직일수록 더 끼어들려 했지만, 도린은 그 틈에 대 둔 수피가 바스러지는 방향을 읽었다. 그는 선원들에게 돛을 반만 펴라고 지시했다. 한 배를 중앙에서 멀어지게 밀 힘이 아니라, 첫물호가 지금 버틸 수 있는 기울기만 택한 지시였다.
리아는 현재 지도를 난간에 펼쳤다. 물에 젖을까 봐 감추던 종이를 처음으로 바람과 물보라 속에 그대로 두었다. 그는 오차가 남은 선 위에 납추를 하나씩 올렸다.
“이 줄은 해초에 걸렸어요. 그러니까 여긴 바닥이 아니에요.”
그는 첫 번째 납추의 줄을 풀었다.
“이 선은 배가 기울어서 틀렸어요. 그러니까 이쪽은 곧장 가지 마세요.”
두 번째 물매듭을 다른 난간 고리에 묶었다.
“이건 어제보다 멀어진 섬이에요. 멀어졌다는 걸 남겨야 오늘의 길을 알 수 있어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지도 잔영이 정한 한 줄의 길에 작은 어긋남이 생겼다. 리아는 완벽한 도면을 찢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지도에 남은 수정 이력을 소리로, 손으로, 물에 닿은 줄로 계속 꺼내 놓았다.
그는 물에 젖은 종이를 누르며 한 번 웃었다. “전에는 이 자국들이 지도지기 실력 부족의 증거인 줄 알았어요. 같은 곳을 여러 번 재고도 달랐으니까요.”
“지금은요?” 내가 물었다.
리아는 중앙으로 끌려가는 납추와, 자기가 덧그은 가느다란 선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은 섬이 제 자리에 있지 않아서 남긴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틀린 날도 있지만, 고친 날도 있어요. 그 둘을 같이 남기지 않으면 오르메처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지도만 남습니다.”
그 말은 중앙을 향해 굳어 가던 물매듭 하나를 멈추게 했다. 줄은 완벽한 도면을 이기지 못했지만, 매듭 속에 남은 다른 손의 힘을 다시 보여 주었다. 리아는 그 힘을 잡아당기지 않고, 다음 측정을 위한 여유만 남겼다.
중앙으로 끌려가던 선원들이 갑판 가장자리에서 서로 부딪혔다. 그들은 오르메의 부두에서 이미 정박을 마쳤다는 감각에 사로잡혀, 실제 밧줄을 놓으려 했다. 나는 선수로 달려가 줄을 잡았다. 물은 두 배 사이에서 뒤엉켜 있었지만, 각 배가 다른 속도와 다른 깊이를 가진다는 사실까지 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리아의 푸른 매듭을 보고, 첫물호 아래의 차가운 흐름만 불렀다.
“이 배는 저 배와 같은 물을 타지 않는다.”
물이 벽처럼 솟지는 않았다. 다만 첫물호 밑의 흐름이, 중앙으로 꺾이던 길에서 한 번 비켜 갔다. 선체가 옆으로 밀리며 작은 배 한 척의 선수와 스칠 거리를 남겼다. 도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조타륜을 돌렸다. 여섯 번째 접합부가 비명을 지르는 듯 삐걱거렸지만, 그는 배를 완벽한 항구로 보내지 않고 사람들 사이의 빈 물길로 밀어 넣었다.
네아는 돛대 밑에 검은 퇴비를 놓고, 첫물호에서 떨어진 수피 조각을 그 위에 세웠다. 그녀는 지도 잔영을 없애려 하지 않았다. 집게 끝으로 수피의 결을 조금 벌려, 지도가 사람들의 팔에 건네던 다음 동작만 가라앉혔다. ‘중앙으로 가라’는 당김이 약해지자, 선원들은 자기가 어느 줄을 잡고 있었는지 다시 기억했다.
마온은 벨로섬 주민들과 함께 난간 줄을 잡았다. 그는 중앙을 향한 힘에 맞서 한 번에 당기지 않았다. 각자 손에 걸리는 무게를 말하게 했다. 아이를 안은 사람은 아이가 기댄 쪽을, 물통을 든 사람은 물이 쏠린 쪽을, 늙은 어부는 줄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각도를 말했다. 불완전한 보고들이 겹치자, 배는 한 방향의 명령보다 더 많은 현재를 갖게 되었다.
마온의 어머니는 마른 목소리로 우물의 물맛이 달라진 날을 말했다. 어린 조카는 비가 오기 전에 지붕에서 떨어진 흙을 떠올렸다. 그 말들은 항로를 바로 계산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지만, 리아는 전부 지도 가장자리에 짧은 점으로 남겼다. 마온은 그 모습을 보고, 오르메에 들어가면 자기 섬의 고생이 모두 사라질 거라는 유혹을 다시 느꼈다. 그러나 그 점들을 지우면, 가족이 함께 버틴 날들도 지도에서 먼저 사라질 것 같았다.
“우리 집은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그가 말했다. 줄을 잡은 사람들 모두에게 들리게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만 오늘 어디가 무너지는지는 우리가 알아야 해요.”
그러나 중앙의 뿌리 골격은 멈추지 않았다. 오르메 도면 아래에서 작은 빈자리가 벌어지더니, 내가 보관하던 봉인이 그쪽으로 끌렸다. 검은 퇴비와 열린 수피 고리 사이에 놓아 둔 첫 룬 파편이 갑판 위를 미끄러졌다.
“안 돼.” 내가 손을 뻗었다.
파편은 손가락 끝을 스치고, 오르메 쪽 뿌리 골격의 빈 결속부에 닿았다.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거리추들이 한 번에 아래로 떨어지고, 물매듭이 각자 다른 매듭을 잃지 않은 채 모두 중앙을 기준으로 당겨졌다. 파편은 봉인을 벗어나 빈 닻의 관측 기준이 되었다.
세른이 두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 역시 파편을 붙잡지 못했다. 좌표 결속부의 금속 조각들이 서로 너무 가깝게 붙어, 그의 손안에서 더는 원래의 간격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파편이 결속된 자리를 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오르메의 가족이 자신을 부르는 기억과, 벨로섬에서 아이를 먼저 배로 밀어 올리던 마온의 손이 같은 자리에 겹쳐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세른은 빈 닻 쪽으로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 침묵이 그의 선택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현재의 손으로, 현실 섬을 재료로 쓰는 쪽에 남았다는 사실만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오르메는 더 정확하게 우리를 읽기 시작했다. 첫물호의 흔들림, 리아가 방금 고친 선, 도린이 잡은 조타륜의 각도, 내 손목 흉터를 감싼 손가락까지. 섬은 그 모든 현재를, 아직 오지 않은 귀환의 역할에 맞추려 했다.
완벽한 지도는 하나의 중앙으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첫 룬 파편이 빈 닻에 단단히 결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