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3장 · 3화
3화. 나이테 없는 집
잔영기록자 · 한국어
아침의 오르메는 하룻밤 사이에 더 넓어져 있었다.
창문을 열자 어제 없던 지붕이 방파제 너머로 이어졌다. 새 골목은 물기 하나 없는 돌길을 따라 부두로 내려왔고, 그 끝에는 배 두 척이 나란히 댈 만한 넓은 수로가 생겨 있었다. 주민들은 그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지 않았다. 각자 늘 쓰던 길을 찾은 사람처럼 새 문을 열고 나왔다.
도린은 정박 줄을 든 채 새 부두로 먼저 내려갔다. 그는 붕대를 벗기지 않은 왼손으로 줄을 잡고, 오른손 손가락을 돌 표면의 홈에 넣었다. 홈은 배가 밀리고 당겨지며 생기는 방향을 따라 깊게 나 있었다. 보기에는 수십 년 동안 큰 배들이 닿았던 부두였다.
그러나 도린은 손가락 끝을 코앞에 가져가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저었다.
“무게가 없습니다.”
리아가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홈이 이렇게 깊은데요?”
“배가 실제로 밀렸으면 돌 가장자리가 한쪽으로 더 깨져요. 줄도 젖었다 마르면서 소금을 남기고. 이건 줄이 당기는 모양만 눌러 놓은 겁니다.”
도린은 첫물호의 정박 줄을 홈 위에 올렸다. 줄이 딱 맞게 들어갔다.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그는 줄 끝에 작은 납추를 묶어 아래로 내렸다. 새 수로의 물은 얕아 보였지만 납추는 바닥을 만나지 못하고 흔들렸다. 부두가 배를 받는 높이도, 물의 깊이도 서로 맞지 않았다.
“여기에는 배가 왔다는 기억만 있어요.” 그가 말했다. “배가 서 있었던 무게는 없고.”
그 말은 도린 자신에게도 닿은 듯했다. 오르메의 완벽한 항구는 그가 잠깐 전부터 보았던 삶과 꼭 맞았다. 여섯 번째 접합부가 비어 있지 않고, 손을 다치지 않고, 어느 배도 파도에 밀리지 않는 항구. 그는 그곳을 오래 바라보다가, 자기 왼손의 수피 붕대를 다시 꽉 조였다.
“첫물호는 여기 묶지 않겠습니다.”
네아는 새로 생긴 집 하나의 벽을 살피고 있었다. 벽은 돌이 아니라 굵은 뿌리를 휘어 세워 만든 것이었다. 수피를 벗긴 자리에 얇은 판자가 끼워져 있었고, 그 위로 창문이 열려 있었다. 겉으로는 오래된 수림섬의 집처럼 보였지만, 나무 냄새가 어제 벤 장작처럼 날카로웠다.
그녀는 흠집 난 집게로 벽 안쪽의 수피를 한 조각 떼어 냈다. 잘린 면에는 나이테가 여러 겹 있었다. 하지만 중심에서 바깥으로 넓어지는 둥근 결이 아니었다. 한쪽은 굵은 나이테가 갑자기 끊겼고, 그 옆에는 전혀 다른 나무의 가는 결이 반대로 이어졌다. 어떤 조각은 비가 많이 온 해의 넓은 띠를 갖고 있었고, 바로 옆 조각에는 가뭄에 줄어든 띠가 먼저 붙어 있었다.
“성장한 나무가 아니에요.” 네아가 말했다. “여러 섬에서 자란 시간을 잘라 이어 집 모양으로 만든 거예요.”
나는 손끝으로 잘린 결을 만졌다. 결 사이에는 삽이나 톱으로 남길 만한 흔적이 없었다. 뿌리가 스스로 옮겨 붙은 것처럼 단단히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맞물린 자리마다 살아 있는 나무가 견딘 계절의 순서가 어긋나 있었다.
“그럼 이 집은 어제 지어진 겁니까?” 리아가 물었다.
“어제라는 말도 모자랍니다.” 네아가 대답했다. “다른 곳에서 자란 것들이, 여기서 오래 자란 것처럼 놓였어요.”
그녀는 수피 조각을 뒤집어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어떤 결에는 모렌 근처 습지에서 나는 잿빛 곰팡이가 얇게 붙어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벨로섬처럼 햇볕이 센 곳의 마른 이끼가 눌려 있었다. 한 나무 안에서 함께 자랄 수 없는 흔적이었다.
“잘라 붙였다는 말이 꼭 누가 칼을 썼다는 뜻은 아닙니다.” 네아가 덧붙였다. “뿌리가 서로의 자리를 빌려 집 모양을 기억한 거예요. 하지만 빌린 계절까지 자기 것이 되는 건 아니죠.”
나는 수피의 이어진 자리 위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쪽과 따뜻한 쪽이 손바닥 아래 나뉘었다. 하나의 집이 된 듯 보였지만, 결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다른 방향으로 밀고 있었다. 어젯밤 화덕에서 본 것과 같았다. 온기는 있으나 불탄 순서가 없고, 집은 있으나 자란 순서가 없었다.
리아는 지도통에서 두 장의 종이를 꺼냈다. 하나는 오늘 새로 잰 현재 지도였고, 다른 하나는 오르메 집에서 찾은 낡은 도면이었다. 도면에는 중앙섬을 중심으로 물이 고르게 드나들고, 열두 섬의 뿌리가 한 광장을 향해 이어지는 그림이 있었다. 선은 너무 반듯했고 섬의 이름 옆에는 누가 어느 집에 살지까지 정해져 있었다.
“이건 공동 계획 모형이에요.” 리아가 말했다. “미레아 어른들이 옛날에 이야기하던 것과 비슷해요. 긴 흉년과 병으로 섬들이 약해지기 전에, 모두가 한곳에 모여 살 수 있게 하자는 계획.”
그는 현재 지도 위에 도면을 겹쳤다. 완벽한 중앙섬의 자리에 실제로는 흐름이 갈라지는 빈 물길이 있었다. 새로 생긴 오르메의 집들은 그 빈 물길을 메운 것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섬들의 뿌리 방향과 물길의 거리를 억지로 당겨와, 도면의 선 위에 눌러 놓고 있었다.
“침몰한 섬이 아니었군요.” 도린이 말했다.
“그런 섬은 없었습니다.” 리아가 말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이건 누군가가 꼭 만들고 싶어 했지만, 만들지 못한 고향의 계획이에요.”
그 말을 듣자 전날 주민들이 불렀던 귀환일이 다르게 들렸다. 그들은 잃어버린 과거에서 우리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지어지지 않은 집에서, 언젠가 돌아올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기다림까지 없던 일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집을 없애기 전에, 무엇을 가져왔는지 알아야죠.”
리아는 두 지도를 다시 분리해 접었다. 완벽한 도면은 종이 가장자리가 거의 닳지 않았고, 현재 지도는 젖었다 말라 생긴 주름과 덧쓴 먹선이 많았다. 그는 두 종이를 같은 지도통에 넣되, 서로 포개지 않게 얇은 수피를 사이에 끼웠다.
“하나는 만들고 싶었던 곳이고, 하나는 지금 지나가는 곳이에요.” 리아가 말했다. “둘을 섞으면 어느 쪽 길도 못 찾을 거예요.”
나는 그가 지도통 뚜껑을 닫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오르메의 완벽한 문이 닫히는 소리와는 달랐다. 종이가 접히며 생긴 주름이 서로 스쳤고, 안쪽의 납추들이 미세하게 부딪혔다. 실패한 측정과 고친 선까지 품은 현재의 소리였다.
그때 부두 쪽에서 물이 낮게 울렸다. 바다의 소리가 아니라, 멀리서 많은 뿌리가 한꺼번에 당겨질 때 나는 둔한 마찰음이었다. 리아가 지도 위의 물매듭을 붙잡았다. 푸른 줄이 한 방향으로 팽팽해졌다.
수평선 바깥에서 작은 섬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떠다니는 나무더미로 보였다. 그러나 가까워질수록 낮은 집 세 채와 둥근 우물, 수림의 뿌리를 감은 밭이 보였다. 섬 가장자리에서는 사람들이 흙에 박힌 말뚝을 붙들고 있었다. 섬은 해류를 타고 온 것이 아니었다. 뿌리 아래가 중앙을 향해 천천히 끌려가고 있었다.
“저건 벨로섬이에요.” 리아가 숨을 들이켰다. “어제 지도에서는 서쪽에 있었는데.”
부두에 서 있던 낯선 남자가 망토를 벗었다. 어제 자신을 세운이라고 소개한 기록관리인이었다. 망토 안쪽에는 종이 대신 얇은 금속 조각과 마른 수피, 납추가 작은 상자에 나뉘어 들어 있었다. 그는 그 조각들을 부두 돌 위에 한 줄로 놓기 시작했다. 글자가 아닌, 서로 다른 무게와 결을 맞추는 배열이었다.
“그 섬을 지금 끌어오면 안 됩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숨긴 까닭은 뭡니까?”
바람이 잠시 그의 망토 자락을 들었다. 안쪽 천에는 지워지지 않은 작은 표식이 있었다. 첫각인회의 현장복 안감에서 본 것과 같은, 세 개의 압점이 서로 닿지 않은 배열. 모렌항에서 오르나에게 파편을 건네고, 에르바의 항해 좌표를 복사한 사람의 손도 그렇게 금속 가루를 묻히고 있었다.
“세른.” 그가 말했다. “첫각인회 현장 인원입니다.”
도린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왼손은 아픈 탓이 아니라 화가 난 탓에 떨렸다.
“모렌에서 도망친 사람이군.”
“도망쳤습니다.” 세른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먼저 왔습니다.”
“왜?”
세른은 중앙섬의 새 집들을 보았다. “오르메에서 자랐다는 기억이 내게 있습니다. 정말로 여기에 살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집의 빗소리와, 내가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감각은 내 삶을 바꿨습니다. 군도가 약해질수록 사람들은 섬마다 같은 일을 반복해 잃어버렸고, 나는 이 계획이 그들을 한곳에 붙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현실 섬을 끌어다 재료로 쓰겠다는 겁니까?”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면 거짓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피하지 않았다. “빈 닻은 뿌리의 구조, 거리의 무게, 화덕의 온기를 한자리에 맞추려 합니다. 나는 그것을 안정된 고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했다는 말로 저 섬 사람들을 설명할 수는 없어요.” 네아가 말했다.
세른은 네아의 집게와 잘린 나이테를 보았다. “그래서 부서지기 전에 기록하려고 왔습니다.”
“기록만 하려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두 위 배열의 납추 하나가 진동했다. 멀리 벨로섬의 뿌리가 물 밖으로 솟아올랐다. 오르메 새 구역 아래에서 나온 뿌리와 마주 물려, 섬을 더 빠르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섬에서 한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 수피 조끼를 입고 허리에 뿌리칼을 찬 젊은 남자였다. 그는 다른 주민들을 말뚝에서 떼어 내며, 뿌리가 갈라지는 곳을 피하라고 외쳤다.
“마온입니다!” 리아가 소리쳤다. “벨로섬 뿌리지기예요!”
마온은 우리가 들리리라 믿지 않는 거리에서, 그래도 두 손을 입가에 모았다.
“뿌리가 집 밑을 먹고 있어요! 물길이 없어졌습니다!”
섬이 기울었다. 우물가의 돌이 굴러가고, 아이 하나가 뿌리 틈으로 미끄러졌다. 마온이 달려가 아이의 팔을 잡았지만, 둘의 발밑 흙까지 중앙 쪽으로 찢겨 나갔다.
도린이 첫물호 쪽으로 뛰었다. “리아, 가장 얕은 길!”
“어제 길은 늦어요. 지금 물매듭으로 잡아야 해요!”
리아는 지도 대신 줄을 풀었다. 푸른 매듭 하나가 팽팽해진 방향, 흰 매듭 하나가 가라앉지 않은 모래톱 방향을 가리켰다. 도린은 그 둘 사이로 첫물호를 밀어 넣었다. 정박 줄은 새 부두에 묶지 않았다. 그는 오래된 첫물호의 고리에 줄을 세 번 걸고, 실제 바다에 남아 있는 굴곡을 따라 배를 돌렸다.
네아는 잘린 나이테 조각을 쥔 채 벨로섬을 바라봤다. “뿌리가 오르메 집 아래에 붙기 전에 결을 나눠야 합니다. 붙어 버리면 저 섬의 계절이 여기 집 벽이 돼요.”
나는 첫물호의 선수에 섰다. 수림은 벨로섬의 뿌리를 내 뿌리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해류도 섬을 밀어낼 힘을 주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있는 물과 뿌리의 경계를, 오르메가 정한 완성된 선보다 먼저 기억하게 하는 일이었다.
네아가 갑판에 검은 퇴비를 세 덩이 놓고, 그 사이에 마온의 섬에서 떨어져 온 젖은 수피를 세웠다. 도린은 줄을 배의 난간과 돛대 아래, 물에 잠긴 암초에 차례로 걸었다. 세 개의 물질은 하나가 되지 않았다. 각자 다른 방향에서 지금의 섬을 붙드는 자리였다.
나는 그 사이의 빈곳에 손을 댔다.
“벨로섬의 뿌리는 벨로섬의 흙으로 돌아간다.”
호명하자 물이 선수 옆에서 갈라졌다. 해류는 오르메를 밀어 부수지 않고, 벨로섬 아래에 남은 깊이를 찾아 흘렀다. 네아가 수피 사이의 결을 집게로 벌리자, 새 집 아래에서 올라온 뿌리들이 서로 다른 계절의 냄새를 내며 떨었다.
세른도 부두의 배열을 발로 흩뜨렸다. 납추와 금속 조각이 돌 위로 굴렀다.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든 방향 하나를 끊은 셈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오르메의 집들은 벨로섬을 놓아주지 않은 채, 더 넓은 그늘을 섬 위로 드리웠다.
첫물호가 가까워지자 도린이 줄을 던졌다. 마온은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줄을 잡았다. 손바닥이 피로 젖었지만, 그는 아이를 먼저 배 쪽으로 밀었다. 리아가 난간 너머로 몸을 내밀어 아이를 받았다. 이어서 마온과 주민들이 한 사람씩 배에 올랐다.
마온이 마지막으로 섬을 돌아봤다. 집 세 채는 아직 서 있었지만, 밭의 뿌리 일부가 이미 오르메 새 골목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 섬은 내 집을 몰라요.” 그가 말했다. “그런데 왜 내 뿌리를 가져가죠?”
세른이 먼 부두에서 그 말을 들었다. 그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지만, 발치에서 흩어진 납추 하나를 줍지 못했다.
오르메의 새 집 아래로 벨로섬의 뿌리가 잠겼다.
빈 닻은 처음으로, 현실의 섬을 제 완성된 고향의 재료로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