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룬3장

2화. 재가 남지 않은 화덕

오르메의 부두는 우리를 기다리느라 조금도 낡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첫물호가 방파제 안쪽에 들어서자, 주민들은 망설임 없이 밧줄을 받아 들었다. 줄을 잡은 손마다 굳은살이 있었고, 매듭은 도린이 쓰는 삼중 매듭보다 한 번 더 감겨 있었다. 그들은 첫물호의 선체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어디가 흔들리는지도 알았다.

“이 접합부는 겨울 전에 갈아야지.”

백발의 남자가 함수 아래를 가리켰다. 도린의 눈이 여섯 번째 접합부가 비어 있는 자리에 멈췄다. 남자는 거기에 손을 대려다, 실제로는 아직 없는 부품을 만지는 듯 허공에서 손가락을 오므렸다.

“지난번에도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가 웃었다. “이번엔 안 미루겠다고.”

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정박 줄을 확인했다. 부두 돌에는 밧줄이 여러 번 미끄러진 홈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바다에서 마르며 남는 소금 껍질이 없었다. 젖은 줄은 방금 묶였는데도 오래 정박한 냄새를 풍겼다.

부두 위에서는 아이들이 리아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지도지기 누나, 중앙 광장으로 가요.”

리아는 당황해 아이들의 손을 하나씩 떼었다. “난 여기 사람이 아니야.”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리아가 길을 잊어버린 줄 알고, 각자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마다 완성된 길이 있었다. 실제 섬의 골목은 눈앞에 있었지만, 리아의 현재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길이었다.

우리는 주민들이 내준 집에 묵기로 했다. 거절하면 첫물호에 남은 선원들이 더 불안해질 터였다. 네아는 집 문턱을 넘기 전에 현관 바닥을 손끝으로 쓸었다. 먼지 한 알이 손가락에 묻었지만, 그 먼지는 사람이 오가며 눌린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조사부터 하죠.” 그녀가 말했다. “기억을 심문하지 말고, 손에 잡히는 것부터.”

그 말에 낯선 남자가 부엌 문가에서 고개를 들었다. 잿빛 여행 망토와 낡은 기록판을 든 그는, 마치 우리보다 먼저 그렇게 하려고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관리인입니다. 세운이라고 부르십시오. 군도 바깥의 항로 기록을 정리하다가 여기 붙잡혔습니다.”

그는 이름을 말할 때도 말끝을 낮게 눌렀다. 손에는 글을 적는 먹물보다 금속 가루와 젖은 흙이 더 많이 묻어 있었다. 기록관리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손이었다.

“뭘 기록하고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같은 귀환일을 말했는지요. 그리고 그날 이전의 물건들이 있는지.”

세운은 기록판을 펼쳤다. 주민들은 전부 다른 나이, 다른 직업을 말하면서도 오늘을 ‘돌아온 저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제 무엇을 했는지 묻자, 대답은 집마다 달랐다가도 같은 문장으로 끝났다. 「배를 기다렸지.」

네아는 그를 오래 바라보다가 부엌 쪽으로 걸었다.

화덕은 따뜻했다. 장작이 타는 소리도 났고, 뚜껑 덮인 솥에서는 생선과 뿌리채소가 끓는 냄새가 났다. 배를 타고 온 뒤라 내 배는 그 냄새에 바로 반응했다. 그렇지만 네아는 솥을 열지 않고 화덕 아래 재부터 작은 접시에 덜었다.

그녀는 집게 끝으로 재를 얇게 나누었다. 불을 오래 쓴 화덕이라면 굵은 장작재와 가느다란 마른풀 재, 눌어붙은 기름, 솥 밑에서 떨어진 조리 찌꺼기가 층을 이루어야 했다. 연료가 바뀐 계절의 색도 남는다. 그런데 접시에 담긴 재는 손가락 사이에서 너무 고르게 부서졌다. 아래로 파도 더 차가운 재가 나오지 않았다.

네아가 화덕 돌 틈에 집게를 넣었다. 틈에서는 열기가 나왔지만, 오래 타며 돌을 그을린 검은 막이 없었다. 막 긁어낸 새 화덕처럼 매끈했다.

“기름은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솥받침 밑을 닦아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있습니다. 하지만 떨어진 자국이 없어요. 생선을 몇 달 굽고도 바닥에 한 번도 기름을 흘리지 않은 부엌은 없죠.”

세운이 기록판에 짧은 선을 그었다. “따뜻함은 있는데, 따뜻해진 순서가 없군요.”

그 문장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나는 화덕을 다시 보았다. 불꽃은 붉었지만 장작의 껍질이 벗겨지며 타들어 가는 냄새가 아니었다. 오래전 누군가가 저녁을 기다리며 느꼈을 법한 온기만, 돌 사이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부엌 주인인 여자가 우리를 보고 웃었다.

“국이 식겠어요. 호명자님은 늘 이 냄새를 좋아하셨잖아요.”

나는 그녀가 기억하는 내가 누구인지 물으려 했다. 그러나 네아가 먼저 그 여자의 손을 잡았다.

“손등의 상처는 언제 났습니까?”

여자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질문처럼 손을 뒤집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희고 가는 흉터가 있었다.

“겨울에 칼을 잘못 쥐었어요. 다 나았죠.”

네아는 손목 가까이의 두꺼운 굳은살을 가리켰다. “이 굳은살은 그 뒤에 생긴 겁니까?”

“그야…….”

여자는 말끝을 흐렸다. 손을 쥐었다 폈다. 굳은살 가장자리는 최근의 상처보다 먼저 뜯겼다가 아문 자리처럼 매끄러웠다. 그런데 손등의 흉터는 새살이 덮인 순서가 반대였다. 오래된 일과 어제의 일이 한 손에서 서로 앞서 있었다.

옆집의 어부도, 부두의 줄잡이도 같았다. 칼에 베인 자국은 오래됐는데 그 위로 생겨야 할 굳은살은 더 젊었다. 어떤 아이의 무릎에는 넘어져 생긴 딱지가 있었지만, 그 딱지 아래에는 이미 여러 해 지난 흉터가 있었다. 그들은 손과 몸이 거짓말을 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몸이 기억한 생활 동작만 너무 매끄럽게 이어져 있었다.

세운은 광장 주변의 집을 돌며 같은 확인을 했다. 그는 주민들이 내민 물건을 함부로 빼앗지 않고, 쓰는 자리와 닳은 자리를 먼저 물었다. 한 노인의 칼집에는 칼날을 밀어 넣으며 생긴 가죽의 눌림이 있었지만, 그 칼집을 허리에 찬 날들이 이어졌다는 땀 냄새가 없었다. 창가의 물동이에는 손잡이가 닳아 있었으나, 바닥에는 물을 비우고 새로 채울 때 생기는 얇은 침전이 한 겹도 남지 않았다.

“완벽한 물건은 생활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세운이 말했다. “생활은 대개 조금씩 틀어지고, 고쳐지고, 놓치는 자리가 있으니까요.”

“기록관리인이 물건을 꽤 잘 보네요.” 리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록이 종이에만 남는다고 생각하면, 현장에서 제일 먼저 속습니다.”

그는 대답하며 창밖을 보았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어느 물건이 빈 닻의 일부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정확했다. 네아는 아무 말 없이 그가 발자국을 피하며 걷는 습관을 지켜봤다. 보통 기록관이라면 젖은 흙을 밟아도 상관없을 길인데, 세운은 바닥의 재와 수피 조각이 놓인 곳을 단 한 번도 밟지 않았다.

나는 전날 받은 기억을 떠올렸다. 흉터 없는 삶에서는 물건들이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고, 고칠 필요가 없었다. 임명장은 구겨지지 않았고, 책상에는 손때가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그럴듯했는지는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내 발밑에는 리아의 장화에서 떨어진 진흙이 있고, 도린이 부두에서 묻혀 온 소금이 있으며, 네아가 화덕 재를 뜰 때 흘린 작은 검은 조각이 있었다. 불편하고 뒤섞였지만, 그 순서가 오늘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을 확인할 때도 같은 원칙을 써야겠어요.” 내가 말했다.

네아가 집게를 접었다. “맞아요. 기억이 완벽해 보인다고 바로 거짓이라 하지 말고, 그 기억이 손과 발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봐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바깥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났다. 광장 쪽으로 향하던 주민 하나가 빈 손으로 문턱을 넘었다. 아직 강제된 저녁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우리는 그를 붙잡지 않고, 그가 어디까지 걸어가려 하는지 뒤따랐다.

리아가 지도통을 꼭 쥐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사라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는 말을 골랐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운의 시선이 잠깐 내게 머물렀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들의 오늘을, 이미 끝난 귀환처럼 밀고 있다는 겁니다.”

오후가 되자 그 밀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는데 주민들이 동시에 식탁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어떤 이는 솥을 든 채 맨발로 걸었고, 어떤 이는 갓 잠든 아이를 안고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중앙 광장 가장자리에 낮은 긴 상을 만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돌아온 사람은 문밖에서 먹지 않아.”

도린이 부두 쪽을 보며 욕설을 삼켰다. 첫물호 선원들까지 배에서 내려와 줄을 옮기고 있었다. 정박을 풀고 배를 광장 쪽 수로로 끌어오려는 움직임이었다. 수로는 작고 얕았다. 배가 들어가면 선체가 부서지고, 사람도 깔릴 수 있었다.

“멈춰!” 도린이 외쳤다.

하지만 선원 하나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장님도 저기서 기다렸잖습니까.”

그 말이 끝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옅은 형체들이 일어났다. 연기나 안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주민의 동작에 얇게 겹친 다른 동작이었다. 누군가는 빈 접시를 받았고, 누군가는 아이의 어깨를 돌려 문 쪽으로 밀었다. 형체들은 사람의 얼굴을 또렷이 갖추지 못했지만, 모두 귀환 저녁에 해야 한다고 믿는 일만 알고 있었다.

세운이 한 걸음 물러났다. “가능성의 생활이 사람을 덮고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이 위험하다고 느꼈다.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눌러 버리면, 이들이 느끼는 기다림과 반가움까지 쉽게 지워 버릴 수 있었다. 화덕의 온기가 가짜는 아니었다. 그 온기를 기다린 마음도 지금 떨고 있었다.

그러나 손에 든 솥을 아이 머리 위로 기울이며 걷는 동작은 멈춰야 했다.

“네아, 지금의 물건을 보여 주세요.”

네아는 알아듣고 화덕에서 가져온 차가운 재 접시를 광장 바닥에 엎었다. 그녀가 집게로 재 가운데를 눌러 얕은 홈을 만들자, 온기가 흐르는 방향과 재가 놓인 방향이 서로 어긋났다. 글자도 표식도 아닌, 물질의 순서가 비어 있는 작은 자리였다.

나는 수로에서 퍼낸 물을 그 홈에 부었다. 물은 흙을 적시고, 실제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발자국 사이로 흘렀다. 나는 네아가 만든 빈 자리와 지금의 물을 이어 호명했다.

“돌아온다는 기억은 남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 물은 오늘 여기로 흐릅니다.”

잔영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정해 둔 순서가 아닌 감촉을 처음 만난 듯 흔들렸다. 나는 주민들의 기억을 끊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손, 뜨거운 솥, 첫물호의 정박 줄과 같은 현재 물질이, 그들의 팔과 다리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도린이 선원에게 달려가 줄을 빼앗았다. 왼손의 붕대가 젖었지만 그는 줄을 자기 몸에 감지 않고 부두 기둥에 세 번 걸었다. “배는 지금 바다에 있다. 저녁상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어.”

리아는 울먹이는 아이 둘을 지도통 뒤로 숨기듯 품에 안고, 그들이 실제로 걸어온 집의 이름을 하나씩 말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광장 쪽을 보려 했지만, 리아가 손에 쥔 줄 매듭을 만지자 멈췄다. 오늘 아침 측량선에서 묻힌 물 냄새가 아직 그 매듭에 남아 있었다.

형체 하나가 내 앞의 여자를 밀었다. 여자는 뜨거운 솥을 든 채 내 쪽으로 비틀거렸다. 나는 솥을 받으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등의 흉터와 손바닥의 굳은살이 내 손에 닿았다. 순서가 어긋난 시간은 고칠 수 없었지만, 이 손이 지금 화상을 입지 않게 할 수는 있었다.

“당신이 기다린 사람을 잊으라는 게 아닙니다.”

여자의 눈이 초점을 찾았다.

“그럼 왜 막아요?”

“당신이 오늘 저녁에 누구를 다치게 할지, 기억이 대신 고르게 하지 않게 하려고요.”

그녀의 손에서 솥이 내려왔다. 잔영의 팔도 함께 처졌다. 다른 주민들도 하나씩 제자리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광장에 놓인 식탁은 여전히 남았고, 음식 냄새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누구도 같은 방향으로 걸으라고 잡아당기지 않았다.

해가 진 뒤, 세운은 우리 숙소의 작은 방 앞에 섰다. 그는 기록판을 접으며 말했다.

“잘 끊으셨습니다. 기록을 없애지 않고, 행동의 이음만.”

“기록관리인이 그런 표현을 자주 씁니까?” 네아가 물었다.

세운은 잠깐 웃었다. “현장에서는 종이보다 이음이 먼저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가 돌아간 뒤에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오르메의 밤은 너무 조용했다. 밖에서는 누군가 웃고, 그릇을 씻고, 내일 아침에도 같은 일을 할 것처럼 문을 닫았다. 그런데 그 소리 사이에는 하루가 쌓여 생기는 헛기침이나 발소리의 망설임이 없었다.

문턱 아래로 종이 한 장이 밀려 들어왔다.

누가 놓고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었을 때 복도는 비어 있었고, 화덕 쪽의 온기만 길게 남아 있었다.

종이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그래도 나를 위한 문서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흉터 없는 손으로 받아 들었을 법한 크기, 잔향기록원의 도장이 찍힐 자리, 사고 없이 실습을 마친 견습에게 정식 호명자 직을 준다는 문장.

내가 존재하지 않은 날에 받았다는 임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