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2장 · 10화
10화. 돌아오는 파도
잔영기록자 · 한국어
파도의 벽은 함대보다 높았다.
첫 룬 파편이 바다를 끌어당긴 자리에 수년 동안 돌아오지 못한 물이 한꺼번에 모였다. 출항 방향이 사라지자 물은 갈 곳을 잃었다. 검은 파도는 기함을 모렌으로 밀지도, 바깥으로 끌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솟구쳤다.
가장 뒤의 배가 먼저 뒤집혔다.
주민들이 물에 떨어졌다. 삼중 매듭을 잡은 사람들이 끌어 올리려 했지만 배마다 줄의 길이도 힘도 달랐다.
“한 줄로 묶으면 전부 같이 가라앉습니다!”
도린이 외쳤다.
그는 기함의 연결 줄을 잘랐다. 함대는 더 이상 하나의 출항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각 배가 파도 앞에서 따로 흔들렸다.
강제된 배열은 풀렸지만 위험은 더 커졌다.
“바다를 돌려보내야 합니다.”
나는 함수 아래의 물길을 읽었다.
파도 안에는 수천 개의 흐름이 있었다. 에르바 앞바다의 오래된 조수, 모렌의 마른 우물 아래에 갇힌 샘, 수림의 뿌리가 머금은 빗물. 어느 것도 스스로 출항을 명령하지 않았다. 파편이 물길의 앞뒤를 같은 방향으로 접어 놓았을 뿐이었다.
네아가 여섯 압점에 집게를 걸었다.
“지금 펴면 물이 원래 낮은 곳으로 돌아갑니다.”
“항구도 잠길 겁니다.”
모렌은 바다가 물러난 뒤 낮아진 해저에 창고와 집을 늘렸다. 옛 조수가 그대로 돌아오면 항구 절반이 물 아래에 들어갔다.
“원래대로 돌려놓는 건 귀환이 아닙니다.”
오르나가 난간을 붙잡고 일어섰다. 다친 오른쪽 무릎은 부어 있었지만 왼발과 두 팔로 몸을 지탱했다.
“현재의 항구가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해요.”
기함이 파도 아래로 기울었다.
수면이 갑판을 덮었다. 차가운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자 네 번째 항해의 침몰 감각이 도린에게 다시 스쳤다. 그는 오른쪽 갈비뼈를 누르지 않았다. 그 압박이 빌려 온 기억임을 알고 자기 호흡의 속도를 찾았다.
“첫물호의 용골을 가져와야 합니다.”
“조선소에 있잖아요.”
“항로목 뿌리에 연결돼 있습니다. 저 부품들이라면 여기까지 부를 수 있어요.”
도린은 닫히지 않은 함수에서 여섯 번째 접합부를 꺼냈다. 빈 자리를 남긴 바깥 고리가 파도 속에서도 단단했다.
나는 검은 퇴비를 접합부에 채웠다.
모렌 방향으로 열린 고리를 그리고 항로목을 호명했다.
마른 해저 아래에서 뿌리가 움직였다.
돛대 숲의 조선소에서 얕은 용골이 먼저 빠져나왔다. 뿌리들이 부품을 감싸 물속으로 운반했다. 접이식 돛대, 덧댄 방향타와 아직 판자를 다 붙이지 않은 선체도 뒤를 따랐다.
수림은 완성된 배를 만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현재 만든 부품을 붙들어 파도 속까지 옮겼다.
도린은 기함 갑판에서 자기 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다섯 항해에서 배운 기술을 썼지만 어느 배도 그대로 복원하지 않았다.
얕은 용골은 모렌의 새 수심에 맞춰 한 뼘 깊어졌다. 삼중 매듭은 구조선 하나가 아니라 함대의 작은 배들이 서로 힘을 나누게 했다. 접이식 돛대에는 사브의 등잔을 매달 자리가 생겼다. 덧댄 방향타는 암초를 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항구의 새 방파제를 따라 돌 수 있게 깎였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접합부가 함수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맞았다.
바깥 고리는 여전히 닫히지 않았다. 다음 항해에서 다른 부품을 덧붙일 자리였다.
“첫물호.”
도린이 배의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의 마지막 배가 아니라, 물이 돌아온 뒤 가장 먼저 만들어진 배.
항로목의 뿌리가 선체를 받쳤다.
수림의 힘은 물을 움직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오늘 만든 기억과 배의 현재 이음을 붙잡아 파도가 과거의 모양으로 되돌리지 못하게 했다.
첫물호가 기함 옆에서 떠올랐다.
도린은 수피 붕대를 한 왼손으로 난간을 잡고 자기 배에 올랐다. 그는 삼중 매듭의 줄을 다른 잔영선들에 던졌다.
“배마다 세 사람이 줄을 잡으세요. 한 사람이 놓쳐도 둘이 남게.”
주민들이 줄을 받았다.
파도가 다시 솟았다.
이번에는 함대가 한 덩어리로 끌려가지 않았다. 첫물호를 중심으로 각 배가 다른 각도에서 파도를 흘렸다. 수림의 뿌리는 선체와 현재의 사람들을 붙들었지만 항해 방향까지 정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물이 돌아갈 자리였다.
사브의 등잔들이 해저에서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파도가 집으로 이어진 뿌리를 덮으며 불씨를 삼켰다. 마지막 불이 사라지면 새 귀항로도 어둠 속에서 끊길 것이다.
사브는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해저를 걸었다. 큰 귀항불은 모렌 등대에 남겨 두고, 손에는 가장 작은 아궁이 불 하나만 들고 있었다.
오르나가 기함의 종을 쳤다.
명령 없는 울림이 수면을 건넜다.
“불을 첫물호로 옮기세요!”
주민들이 등잔을 손에서 손으로 전달했다. 파도에 쓰러진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 불부터 밀어 주었다. 각 불꽃에는 다른 집의 냄새와 기다리는 사람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불은 물을 밀어내지 않았다.
돌아갈 곳의 위치를 밝혔다.
첫물호 돛대에 등잔이 걸리자 모렌의 창문과 조선소, 아직 덮지 못한 창고의 윤곽이 파도 너머에 나타났다. 귀항불은 과거의 에르바가 아니라 지금 사람들이 사는 항구를 비췄다.
“물이 저 불을 기억하게 하세요.”
사브가 외쳤다.
나는 파도에 손을 넣었다.
차가운 흐름마다 도착의 기억이 있었다. 긴 항해 끝에 닻을 내린 무게, 젖은 선원을 받아 준 부두, 부서진 배를 고친 망치 소리. 귀항불이 품은 것은 떠나는 명령이 아니라 돌아온 것을 맞이한 자리였다.
“모렌의 현재 불로 돌아오는 물.”
내 호명에 불꽃이 수면에 반사됐다.
물은 처음으로 낮은 곳을 찾았다.
새 귀항로를 따라 파도의 앞부분이 모렌 쪽으로 흘렀다. 그러나 벽의 중심은 여전히 기함 아래에 붙어 있었다.
첫 룬 파편이 남아 있었다.
여섯 압점은 물길, 항로목, 귀항불과 선체를 다시 하나의 출항으로 접으려 했다. 네아의 집게가 압점을 붙들고 있었지만 손잡이에 금이 갔다.
“오래 못 버팁니다.”
“파편을 떼겠습니다.”
오르나가 말했다.
명부의 중앙 판은 기함 함수 안쪽에 박혀 있었다. 물이 차오를 때마다 검은 돌조각이 더 깊이 들어갔다.
“무릎으로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제가 넣었습니다.”
“현장 사람이 판을 팠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의 말을 믿고 매일 명부를 눌렀어요. 항구 사람들의 역할을 파편에 연결했습니다.”
오르나는 다친 다리를 줄로 묶었다. 도린이 삼중 매듭을 만들어 기함 돛대에 고정했다.
“떨어지면 당깁니다.”
“파편을 잡기 전에는 당기지 마세요.”
그녀는 함수 안으로 내려갔다.
검은 물이 허리, 어깨, 머리까지 삼켰다. 줄을 통해 오르나의 움직임만 전해졌다.
파편은 마지막 명령을 만들었다.
기함의 모든 판자가 모렌 반대쪽으로 돌아섰다. 잔영선들의 돛도 다시 부풀었다. 첫물호를 붙들던 뿌리가 출항 방향으로 휘었다.
네아가 깨진 집게 하나를 놓쳤다.
“압점 하나가 열렸어요!”
열린 압력이 오르나의 줄을 타고 올라왔다.
「항로지기는 마지막으로 떠난다.」
명부 어디에도 없던 문장이었다. 첫 각인의 원이 파편과 함께 심어 둔 마지막 채무였다.
오르나의 줄이 함수 안쪽으로 끌려갔다.
도린이 삼중 매듭을 당겼다. 수피 붕대가 찢어졌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주민 둘이 뒤에서 줄을 잡아 힘을 나눴다.
나는 줄 위에 열린 고리를 그렸다.
“항로지기라는 이름은 죽는 순서를 정하지 않는다.”
검은 압력이 고리 안에서 멈췄다.
“지킨다는 일은 대신 떠나는 것이 아니다.”
네아가 남은 집게로 문장과 오르나 사이의 방향을 끊었다.
줄이 가벼워졌다.
잠시 뒤 오르나가 물 위로 올라왔다.
한 손에는 중앙 목판을, 다른 손에는 첫 룬 파편을 쥐고 있었다.
그녀가 파편을 갑판에 던졌다.
검은 돌조각은 여섯 홈을 아래로 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파도의 벽이 기함 위로 무너졌다.
나는 파편 둘레에 검은 퇴비를 쌓았다.
네아가 끊어 낸 강제 방향들을 퇴비에 묻었다. 항로목에서 온 밝은 수피를 여섯 조각으로 잘라 압점 사이에 세웠다. 수피는 어느 점도 서로 직접 잇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바깥이 열린 고리를 그렸다.
봉인은 파편을 파괴하지 않았다.
여섯 압점이 다시 한 방향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각자의 끝을 드러냈다. 물길은 물길로, 기억은 기억으로, 불은 불로 남았다.
“다른 힘을 하나의 명령으로 만들지 않는다.”
내가 호명했다.
네아가 마지막 집게를 닫았다.
파편의 압력이 검은 퇴비 속으로 가라앉았다.
파도의 벽이 무너졌다.
물은 함대를 덮치지 않고 배 사이로 갈라졌다. 돌아오는 조수는 잔영선들을 하나씩 모렌으로 밀었다. 선체를 만들던 과거의 동작은 물에 풀려 항로목으로 돌아갔다.
수림은 첫물호와 주민들의 현재 기억을 붙들었다.
귀항불은 물이 도착할 항구를 밝혔다.
세 힘은 서로의 일을 빼앗지 않았다.
배가 사라진 사람들은 삼중 매듭을 잡고 첫물호와 남은 소금배에 올랐다. 도린은 모든 줄을 확인한 뒤에야 왼손을 놓았다. 수피 붕대 아래 상처는 깊었지만 피는 멎어 있었다.
기함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오르나는 함수에 서서 중앙 목판을 두 조각으로 갈랐다. 첫 조각에는 과거의 역할표를 그대로 남겼다. 둘째 조각에는 오늘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을 직접 적었다.
“둘 다 보관하겠습니다.”
사브가 말했다.
“하나는 받은 기억이고, 하나는 우리가 한 일이다.”
오르나는 허리에서 항로지기의 매듭을 풀었다.
“보관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
“한 사람이 길과 기록과 종을 모두 쥐어서 파편이 항구 전체를 묶을 수 있었어요.”
그녀는 매듭을 종 아래에 놓았다.
“오늘부로 항로지기에서 물러납니다.”
사브는 말리지 않았다.
모렌으로 돌아온 뒤 주민들은 항로목의 증여 기록을 두 겹으로 정리했다. 안쪽 나이테에는 에르바에서 받은 기술과 원래 주인의 흔적을 남겼다. 바깥 나이테에는 모렌에서 바꾼 방법, 사용한 사람과 그 결과를 따로 새겼다.
두 기록 사이에는 언제든 풀 수 있는 매듭을 걸었다.
과거를 지우지 않되 현재를 과거의 연장으로만 만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사브는 귀항불을 다시 등대에 합치지 않았다. 집마다 돌아간 아궁이 불 하나하나를 귀항불로 기록했다.
오르나는 부목을 댄 오른쪽 무릎으로 기록실을 오갔다. 항로지기의 자리에는 앉지 않았지만, 파편을 받은 날과 숨긴 기간, 얼굴을 보지 못한 현장 사람의 말까지 빠짐없이 증언했다.
첫 룬 파편은 증여실의 열린 봉인 안에 보관됐다.
검은 퇴비와 수피가 여섯 압점을 갈라 놓았고, 누구든 바깥 고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 각인의 원이 가져간 다음 좌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금속 침에 남은 미세한 압력은 바다 너머의 새로운 방향을 가리켰다.
도린은 첫물호를 완성하는 데 사흘을 더 썼다.
그는 다섯 항해의 부품마다 작은 홈을 남겼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원래 주인을 자기 이름으로 덮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옆에는 여섯 번째 접합부와 수피 붕대의 조각을 붙였다.
빌려 온 기억 다섯 개와 도린이 직접 다친 하루가 한 배에 나란히 남았다.
출항을 앞둔 아침, 젊은 염부와 구조 매듭을 배운 주민들이 첫물호에 물과 식량을 실었다.
“목적지는 정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도린은 바다 너머를 가리켰다.
첫 각인의 원이 복사해 간 좌표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새 귀항로에서 갈라지는 또 다른 물길이었다.
“그들을 뒤쫓는 것만으로 항해를 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먼저 저 물길 끝의 사람들을 만나겠습니다. 거기서 좌표가 이어지면 조사하고, 아니면 새 지도를 만들죠.”
“누구의 항해입니까?”
도린은 왼손의 새 붕대를 매만졌다.
“첫물호에 탄 사람들의 항해입니다.”
네아가 갑판에 올랐다. 무광 집게는 세 개만 남았고 모두 흠집투성이였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전부 잠재우려 하면 바로 말해 주세요.”
“네아도 제가 모든 기억을 의심하면 바로 막아 주세요.”
“서로 바쁘겠네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모렌을 돌아봤다.
바다는 부두의 새 높이에서 잔잔히 오르내렸다. 아이들은 물에 젖은 마지막 출항 명부 조각을 말리고 있었고, 조선공들은 돌아온 목재로 작은 배를 만들었다. 떠나려던 사람과 남으려던 사람이 같은 줄을 잡고 돛을 올렸다.
종이 울렸다.
출항을 명령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항구에 배가 들어오고 나갈 때 누구나 울릴 수 있는 종이었다.
첫물호가 모렌을 떠났다.
바다는 돌아오는 법을 기억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