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2장 · 8화
8화. 돌아갈 곳 없는 배
잔영기록자 · 한국어
마른 바다의 배들은 파도 대신 발걸음 위에 떠 있었다.
주민 한 사람이 해저로 내려설 때마다 모래가 물결처럼 솟아 선체 밑을 받쳤다. 백 명이 걸으면 백 겹의 출항이 포개졌다. 기억으로 만든 물결은 젖지 않았고, 배는 그 위에서 실제 배보다 조용히 흔들렸다.
사람들은 명부의 역할대로 갈라졌다.
천막장이는 가장 가까운 배의 돛줄을 당겼다. 소금 창고 주인은 아이들을 선창에 태웠다. 조선공들은 도끼와 망치를 들고 빈 이음매를 찾아다녔다. 누구도 지시를 듣지 않았지만, 서로의 다음 동작을 이미 아는 것처럼 움직였다.
“타지 마세요!”
도린이 외쳤다.
그 목소리에 몇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눈에는 분명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몸은 멈추지 않았다.
“도린, 손을 빌려줘요.”
한 조선공이 줄을 건넸다.
“왜 출항하는 겁니까?”
“바다가 돌아와야 하니까.”
“어디로 가는지는 압니까?”
조선공의 입이 벌어진 채 멈췄다. 명부에는 목적지가 없었다.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손은 줄을 당겼다.
도린이 줄을 놓지 않았다.
배와 조선공 사이의 힘이 도린의 왼손에 걸렸다. 손바닥에 오래된 화상 같은 통증이 번졌다. 안개 구조선의 밧줄잡이가 품었던 감각이었다.
“이 줄을 당기면 세 번 감아야 합니다.”
도린의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첫 고리는 사람을 잡고, 둘째는 힘을 나누고, 셋째는 구조하는 사람이 놓쳐도 매듭이 풀리지 않게 했다. 다섯 항해 중 두 번째 기억, 안개 속에서 두 척을 끌어낸 삼중 견인 매듭이었다.
“그대로 묶어요.”
내가 말했다.
“배가 아니라 사람 쪽에.”
도린은 마지막 고리를 조선공의 허리에 돌렸다. 줄 반대편을 돛대 숲의 살아 있는 뿌리에 걸었다.
조선공이 배에 오르자 줄이 팽팽해졌다. 몸은 앞으로 끌려가고 현재의 뿌리는 뒤에서 잡았다. 두 방향 사이에 얇은 검은 결이 드러났다.
네아가 무광 집게로 그 결을 집었다.
“이게 출항 방향입니다.”
그녀는 곧바로 자르지 않았다.
검은 결 주변에는 조선공이 평생 쌓은 기술이 수십 갈래로 얽혀 있었다. 아버지에게 배운 톱질, 모아에게 배운 용골 각도, 도린에게 알려 준 청동 못의 간격. 모두 항로목에서 받은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섞인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까지 붙어 있어요.”
“그걸 전부 떼면 멈출 수 있습니까?”
“멈추는 게 아니라 길을 잃겠죠.”
네아는 집게를 느슨하게 벌렸다.
“항해하려는 마음과 이 배에 타라는 방향을 갈라야 합니다.”
우리는 조선공에게 물었다.
“바다가 돌아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의 입술이 떨렸다.
“배를 만들고 싶어요.”
“누구의 배입니까?”
“내 아들의 배.”
“지금 눈앞의 배입니까?”
“아니요.”
대답하는 순간 검은 결이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배로 곧게 뻗었고, 다른 하나는 그가 아들과 함께 세운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네아가 배로 향한 결만 끊었다.
조선공의 발이 모래 위에 멈췄다. 그는 허리를 묶은 줄을 풀지 않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배는 만들고 싶습니다.”
“그 마음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 배에는 타고 싶지 않아요.”
첫 분리는 성공했다.
문제는 배가 너무 많고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네아는 끊어 낸 검은 결을 퇴비 위에 내려놓았다. 결은 잘린 뒤에도 배 쪽으로 기어갔다. 그녀는 집게 끝으로 눌러 형태를 살폈다.
“헤아린에서는 이런 게 보이면 먼저 잠재웠어요.”
“이번에도 그랬다면 조선공의 기술이 사라졌을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 전부 조용하게 만들고 싶어집니다.”
함대에서 밧줄 끄는 소리가 몰려왔다. 수백 개의 빌려 온 기억이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끌고 있었다. 위험만 생각하면 뿌리째 잠재우는 편이 빨랐다.
네아는 퇴비 위의 결을 태우지 않았다. 대신 작은 수피 통에 넣어 봉했다.
“없애기 전에 어디까지가 강요인지 확인하겠습니다.”
“제가 전부 의심하려 들면 막아 주세요.”
“제가 전부 지우려 들면 부르세요.”
우리는 같은 결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댔다. 서로의 판단을 대신하지 않고, 지나친 방향만 붙드는 약속이었다.
마른 해저의 안개가 걷힐 때마다 새로운 선체가 나타났다. 에르바의 마지막 날 떠났어야 할 배뿐 아니라, 모렌 사람들이 평생 상상한 배까지 출항 잔영에 붙었다. 낡은 소금배 옆에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은 거대한 곡물선이 있었고, 아이가 나무 조각으로 만든 작은 배가 집 한 채 크기로 흔들렸다.
첫 룬 파편은 모든 ‘떠나는 배’를 같은 함대로 눌러 놓았다.
함대에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방향은 오직 항구 밖이었고, 그 밖에 무엇이 있는지는 어느 기억도 담지 않았다.
“한 사람씩 물어볼 시간이 없습니다.”
오르나가 해저로 내려오며 말했다.
그녀는 출항종의 줄을 잘라 허리에 감고 있었다. 명부는 등에 멨지만 더 이상 판을 뽑지 않았다.
“명부의 역할을 이용하면 묶인 사람들을 나눌 수 있어요.”
“다시 역할을 부여하려는 겁니까?”
“아니요. 같은 역할끼리 압력이 연결돼 있습니다. 한 곳에서 결을 드러내면 멀리 있는 사람도 함께 보일 겁니다.”
네아는 오르나가 가리킨 목판을 살폈다.
“도움이 됩니다. 다만 역할의 끝을 오르나가 정하면 안 됩니다.”
“알아요.”
그 대답은 작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지막 명부를 해체했다. 천막장이, 조선공, 물지기, 불지기처럼 같은 역할을 맡은 판끼리 마른 모래에 원을 만들었다. 목판 사이에는 도린이 삼중 매듭을 이어 주민들을 묶었다.
묶는 줄은 구속이 아니었다.
배로 끌려가는 사람을 현재의 항구와 연결하는 손잡이였다.
도린의 왼손이 계속 줄에 쓸렸다. 과거의 화상 감각 위로 실제 살갗이 벗겨졌다. 피가 매듭에 스며들었지만 그는 손을 바꾸지 않았다. 삼중 매듭의 마지막 고리는 왼손으로 눌러야 같은 힘을 냈다.
“이건 기억 속 상처가 아닙니다.”
내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압니다.”
“그러면 멈춰야 합니다.”
“저 사람들이 전부 올라간 뒤에는 늦습니다.”
도린은 다음 줄을 잡았다.
“다른 사람의 기억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 지금 제가 잡아서 생긴 상처입니다.”
그 말 때문에 손을 놓으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수림의 어린 뿌리를 불렀다. 검은 퇴비를 피가 맺힌 손바닥에 얹자 얇은 수피가 자라 상처를 감쌌다. 완전히 아물게 하는 대신 더 벌어지지 않게 잡는 붕대였다.
도린이 손을 쥐었다 폈다.
“충분합니다.”
그는 수피 붕대 위로 줄을 다시 감았다.
마른 해저 반대편에서 불이 솟았다.
사브가 귀항불을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등대의 큰 불씨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모렌의 집마다 들러 아궁이 불을 작은 등잔에 나눠 담았다.
어제 끓인 수프의 냄새, 오늘 구운 빵의 그을음, 젖은 장작의 연기가 서로 다른 불꽃에 남아 있었다.
“귀항불은 하나가 아니다.”
사브가 등잔들을 모래에 놓았다.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곳마다 있다.”
오르나가 허리의 목판을 만졌다.
「귀항불을 끌 사람.」
그녀는 판을 꺼내 불에 넣었다. 판은 타지 않았다. 대신 문장 밑의 검은 압력이 불꽃 밖으로 밀려났다.
사브는 집게로 압력을 건져 모래에 묻었다.
“불을 끄라는 역할은 끝이다.”
“아직 제가 항로지기입니다.”
“그래서 직접 끝내라.”
오르나는 판을 무릎으로 부러뜨렸다.
인간의 글로 적힌 문장이 둘로 갈라졌다. 항로목의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등잔들이 한꺼번에 타올랐다.
불은 함대를 태우지 않았다. 선창과 갑판에 오른 사람들의 얼굴만 비췄다. 누구의 집에서 온 불인지 알아본 주민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건 우리 아궁이예요.”
“아침에 내가 불씨를 살렸는데.”
“돌아가면 빵이 탈 거야.”
현재의 말이 늘어날수록 발밑의 마른 물결이 약해졌다.
나는 항로목의 뿌리를 등잔 사이에 뻗게 했다. 뿌리는 오래된 항해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방금 말한 집과 물건을 따라갔다. 타다 남은 빵, 아들의 작업대, 오늘 갈아 둔 칼, 아직 지붕을 덮지 못한 창고.
현재의 관계가 수림의 붙들뿌리가 됐다.
네아는 역할마다 드러난 검은 결을 잡았다. 한 갈래는 사람을 함대로 끌었고, 다른 갈래는 바다를 향한 호기심과 기술,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 흩어졌다.
“함대 방향만 끊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모든 주민에게 들리게 말했다.
“바다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지우지 않아요.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대신 만들지 않겠습니다.”
무광 집게들이 닫혔다.
천막장이들의 원에서 검은 결이 끊어졌다. 조선공들의 원, 곡식지기들의 원, 아이들을 안은 사람들의 원에서도 같은 파열음이 났다.
수백 명이 동시에 휘청였다.
도린과 항구에 남은 조선공들이 삼중 매듭을 당겼다. 첫 고리가 몸을 받치고, 둘째가 힘을 나누고, 셋째가 놓친 사람을 붙들었다.
가장 먼 곡물선에서 줄 하나가 터졌다.
아이 둘을 안은 남자가 선창 안쪽으로 끌려갔다. 명부가 그에게 준 역할은 아이를 배에 태우는 것이었고, 발은 자기 몸보다 그 동작을 먼저 지켰다.
도린이 연결 줄을 손목에 감고 달렸다. 물도 없는 해저에서 배까지 닿을 길은 없었다. 나는 모래 아래의 항로목 뿌리를 불렀고, 오르나는 명부의 ‘아이를 옮길 사람’ 판을 뿌리 끝에 걸었다.
“이 판은 배 쪽으로만 열려 있습니다.”
그녀가 구멍의 방향을 손톱으로 긁어 넓혔다.
“그러면 항구 쪽에도 끝을 만드세요.”
오르나는 목판 반대편에 새 구멍을 뚫었다. 오래된 역할표를 훼손하는 손이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뿌리가 새 구멍을 통과해 선창까지 뻗었다.
도린은 줄을 세 번 감았다. 첫 고리가 남자의 허리를 잡고, 둘째가 아이들의 무게를 나눴다. 셋째 고리를 조이는 순간 수피 붕대가 붉게 젖었다.
네 사람이 뿌리 위로 미끄러져 돌아왔다.
남자는 모래에 무릎을 짚자마자 아이들을 놓지 않았다. 명부의 강요가 끊긴 뒤에도 그 행동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그가 원해서 품은 것이었다.
배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물이 아니라 모래 위로 굴렀다.
그들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기억을 잃어서가 아니라, 자기 발로 걷는 법을 다시 확인하느라 발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떠나려고 나왔어요.”
젊은 염부 하나가 말했다.
그는 줄을 풀고도 항구 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모렌 밖을 보고 싶어요.”
오르나가 그에게 물었다.
“저 배에 오르겠습니까?”
염부는 눈앞의 잔영선을 보았다. 돛은 출항하는 모습만 반복했고, 선창에는 물도 식량도 없었다.
“저건 싫습니다.”
그는 도린을 돌아봤다.
“진짜 배가 생기면 태워 주세요.”
도린이 수피 붕대를 한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돌아오는 길도 같이 만들죠.”
강제로 끌려온 사람도 기술을 잃지 않았다. 배에서 내려온 천막장이는 찢어진 줄을 보고 매듭부터 고쳤다. 소금 창고 주인은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 항구로 옮겼다. 명부가 요구한 동작과 닮았지만 이제 멈출 때를 스스로 알았다.
함대의 바깥쪽 배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의 물결이 줄자 작은 배부터 모래 속으로 가라앉았다. 선체를 이루던 기억은 항로목의 뿌리를 따라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그때 기함에서 검은 줄 여섯 가닥이 솟았다.
줄은 역할의 원을 건너뛰고 첫 룬 파편과 직접 이어졌다. 명부를 풀어도, 사람들의 방향을 끊어도 마지막 출항의 중심은 남아 있었다.
기함의 닫히지 않은 함수가 벌어졌다.
그 안에서 다섯 항해의 부품과 같은 형상이 드러났다. 얕은 용골, 삼중 매듭, 접이식 돛대, 덧댄 방향타, 닫히지 않은 결속부.
도린이 만든 부품들의 잔영이었다.
“내 작업장에서 가져간 겁니까?”
“가져간 게 아닙니다.”
나는 검은 줄의 압력을 읽었다.
“도린이 만들 때마다 모양을 베꼈습니다.”
기함은 다섯 기억을 한 척의 마지막 배로 만들고 있었다.
도린의 여섯 번째 접합부만 없었다. 다음 부품을 붙일 자리를 남기는 현재의 이음은 출항을 완성하는 배열에 들어맞지 않았다.
기함의 돛이 펼쳐졌다.
마른 해저 깊은 곳에서 물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기억이 아니었다.
모래 틈에서 차가운 물이 솟아 도린의 장화 밑창을 적셨다. 첫 룬 파편이 억지로 잡아당긴 물길이 함대 아래까지 도착하고 있었다.
“바다가 옵니다.”
오르나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보다 공포가 먼저 번졌다.
우리가 사람들의 방향을 풀어 준 동안에도 가장 앞선 배들은 이미 기함에 줄을 걸었다. 항구 주민 대부분이 그 갑판과 선창에 남아 있었다. 분리한 결이 다시 붙지는 않았지만, 실제 물이 배를 받치면 그들을 끌고 갈 수 있었다.
도린이 삼중 매듭의 줄을 기함 쪽으로 던졌다.
수피 붕대 사이로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모두 내리게 할 수 있습니까?”
“배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마른 모래 위로 첫 파도가 얇게 펼쳐졌다.
돌아갈 곳 없는 함대가 물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