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2장 · 7화
7화. 마지막 출항 명부
잔영기록자 · 한국어
종은 한 번 울렸지만, 항구 사람들은 두 번째 울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마다 사람이 나와 있었다. 조선공은 망치를 허리에 찼고, 염부는 빈 소금 자루를 등에 멨다. 아이를 업은 사람도, 지팡이를 짚은 사람도 모두 마른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왜 나왔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종이 다시 울리면 알게 될 겁니다.”
오르나는 종루 아래에서 마지막 출항 명부를 펼치고 있었다.
명부는 하나의 판이 아니었다. 길쭉한 목판 서른두 장이 밧줄로 묶여 있었고, 판마다 사람 이름 대신 역할이 새겨져 있었다.
「첫 돛을 펼칠 사람.」
「부서진 배에서 아이를 옮길 사람.」
「남은 곡식을 나눌 사람.」
「귀항불을 끌 사람.」
“귀항불을 왜 끕니까?”
사브가 물었다.
오르나는 해당 목판을 뒤집었다.
「돌아올 항구가 없음을 확인한 뒤 불을 바다에 버린다.」
사브의 마른 손이 떨렸다.
“이건 등대지기의 말이 아니다.”
“에르바가 가라앉던 날에는 필요했겠죠.”
“돌아올 곳이 없을수록 불을 남긴다. 누군가 먼저 돌아와 기다릴 수 있게.”
오르나는 대꾸하지 않고 첫 목판을 뽑았다. 마을 끝에서 한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평생 천막을 꿰맨 사람이었다. 그녀는 마른 돛을 펼치는 몸짓을 했다.
둘째 판을 뽑자 소금 창고 주인이 아이를 안는 자세를 취했다. 셋째 판에는 도린이 반응했다. 오른발이 반 걸음 뒤로 빠지고 두 손이 보이지 않는 방향타를 잡았다.
도린은 즉시 여섯 번째 접합부를 가슴에 눌렀다.
“이건 제 손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르나는 판을 명부에 되돌려 끼웠다.
“하지만 손이 알고 있죠.”
“알고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건 다릅니다.”
“항구가 그 차이를 따지다가 바다를 잃었습니다.”
네아가 우리 사이로 들어왔다.
“다음 종을 울리기 전에 명부를 확인하겠습니다.”
“증여실에서 이미 확인했잖아요.”
“채무의 방향은 확인했습니다. 근원은 아직입니다.”
오르나는 명부를 품에 안았다.
“당신들이 틀렸다면요?”
“그때는 종을 울리지 않아도 출항이 시작되겠죠.”
내가 말했다.
“당신 말대로 이게 항구 전체의 뜻이라면, 판 하나를 살펴본다고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오르나는 한참 동안 종의 추를 바라봤다. 마침내 명부의 밧줄을 풀었다.
“해가 마른 등대 끝에 닿을 때까지만입니다.”
우리는 종루 바닥에 목판을 역할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판에 적힌 것은 평범한 사람의 언어였다. 피난선에서 필요한 일을 급히 나눈 표였다. 획의 깊이도 일정하지 않았고, 어떤 문장은 나중에 고쳐 쓴 흔적이 있었다.
마법을 품은 글도, 룬의 형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판 아래에는 전혀 다른 배열이 숨어 있었다.
목판마다 구멍이 여섯 개씩 뚫려 있었다. 밧줄을 꿰기에는 너무 작고,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판을 역할 순서대로 맞대자 구멍들이 여섯 줄의 완만한 곡선을 만들었다.
나는 검은 퇴비를 얇게 뿌렸다.
가루가 구멍 속으로 스며들며 압력의 흔적을 드러냈다. 첫 줄은 항로목의 가장 깊은 뿌리로 향했다. 둘째는 마른 해저 아래의 물길, 셋째는 귀항불, 나머지 세 줄은 돛대 숲의 선체 부품과 이어졌다.
서로 다른 것들을 같은 순서로 당기는 배열이었다.
도린이 닫히지 않은 함수 결속부를 명부 곁에 놓았다. 다섯 기억이 만든 청동 턱이 목판의 구멍과 정확히 맞았다.
“배의 이음과 역할표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배를 완성하면 사람도 역할을 완성하게 되는 겁니까?”
네아가 물었다.
나는 구멍 하나에 손끝을 댔다.
차가운 압력이 손가락을 지나 발바닥까지 내려갔다. 내 오른발이 앞으로 움직였다. 몸이 기억한 걸음이었다. 헤아린에서 첫 룬 파편 앞에 섰을 때, 진실한 이름의 맹세를 시작하며 디딘 첫걸음.
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나타났다.
모렌에 도착한 날 보았던 내 발자국과 같았다.
오르나가 숨을 삼켰다.
“전에 이곳에 왔었군요.”
“아닙니다.”
“저 흔적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나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내 발은 같은 각도로 두 번째 걸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네아가 무광 집게를 발자국 앞에 세웠다. 방향이 막히자 압력이 발목을 비틀었다.
“사람을 기억한 흔적이 아니에요.”
네아가 말했다.
“동작을 베낀 겁니다.”
그녀는 집게를 옆으로 옮겼다. 젖은 발자국도 집게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이 흔적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첫걸음을 다시 만들 뿐이에요.”
나는 헤아린에서 파편을 조사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파편은 내 맹세를 듣지 못했다. 대신 발의 압력, 숨을 들이마신 길이, 손을 든 순서를 받아들였다.
“관찰 기준입니다.”
나는 발을 뒤로 빼며 말했다.
“첫 룬 파편이 여러 대상을 한 방향으로 정렬할 때, 제 동작을 기준으로 복사한 겁니다.”
오르나는 발자국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럼 파편이 이 항구에 오기 전부터 당신을 알았다는 말입니까?”
“헤아린에서 묻은 겁니다. 잃어버린 파편이 가져온 건 제가 아니라 그때 베낀 걸음입니다.”
네아가 목판 하나를 들었다.
“시간이 뒤집힌 것도, 잊어버린 방문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음매가 같은 동작을 재사용하고 있어요.”
오르나는 납득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나 젖은 흔적을 손으로 문질렀을 때 발자국은 피부에 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누가 이 파편을 명부에 끼웠습니까?”
내가 물었다.
종루 밖의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아직 울리지 않은 종을 바라보는 움직임이었다.
오르나는 목판들을 다시 모으려 했다. 도린이 밧줄 한쪽을 잡았다.
“지금 말해야 합니다.”
“놓으세요.”
“어디서 얻었습니까?”
오르나의 손등에 핏줄이 솟았다.
“바다가 줄어들기 시작한 첫해였습니다.”
그녀가 힘을 풀었다.
“항로지기였던 어머니가 죽고 사흘 뒤, 낯선 사람이 찾아왔어요. 얼굴을 가리는 모자와 소금비를 맞은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첫 각인의 원 사람입니까?”
오르나는 대답 대신 명부 가운데의 두꺼운 목판을 뒤집었다. 판 안쪽에 여섯 압점을 담은 검은 돌조각이 박혀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첫 룬 파편이었다.
빛도 글자도 없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깨진 면과 여섯 개의 눌린 홈만 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첫 각인의 원을 위해 현장을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이 파편은 바다를 되돌릴 열쇠이고, 마지막 출항이 끝나면 모렌의 물길이 열린다고 했어요.”
“대가를 요구했습니까?”
“없었습니다.”
“파편을 어디서 얻었는지는요?”
“말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봤습니까?”
“아니요.”
“목소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부러 거칠게 냈습니다. 나이도, 태어난 곳도 짐작할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은 오르나에게 파편을 넘기고 명부의 중앙 판을 직접 파냈다. 구멍을 맞추는 동안 장갑을 한 번도 벗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떠나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항구를 떠났다.
“왜 숨겼습니까?”
사브가 물었다.
“바다가 정말 돌아오면 아무도 묻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다는 돌아오지 않았다.”
“출항이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오르나는 명부의 파편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도 없어요.”
“파편이 기술과 사람과 물길을 억지로 같은 방향에 묶었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항구를 살리려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피난하던 그날에는 그랬겠죠.”
나는 명부의 첫 판을 들었다.
“이건 에르바 사람들이 살아남으려고 만든 역할표입니다. 그날의 필요가 오늘의 의무는 아닙니다.”
오르나는 거리의 주민들을 보았다.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도 바다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죽었다. 항로지기들은 대마다 마지막 출항을 준비했고, 누구도 끝내지 못했다.
“오늘 떠나지 않으면 내일은 무엇이 남죠?”
“오늘 여기서 만든 것이 남습니다.”
도린이 여섯 번째 접합부를 들어 보였다.
“제가 이걸 만들었습니다. 다섯 항해의 기술을 썼지만, 어느 항해에도 없던 부품입니다.”
“도린은 다섯 사람의 귀향까지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못 한 일을 대신해야 합니까?”
“그 기억으로 배를 만들고 있잖아요.”
“제 배를 만들고 있습니다.”
말은 종루 안에서 오래 울렸다.
오르나는 도린을 보지 않고 파편을 명부에서 떼어 내려고 했다. 검은 돌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섯 홈에서 압력이 뻗어 목판들을 다시 역할 순서로 끌어당겼다.
나는 한 줄을 끊어 보았다.
첫 판이 자유로워지는 순간, 거리의 여자가 쓰러졌다. 돛을 꿰매던 평생의 감각까지 손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네아가 즉시 선을 복구했다. 여자가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전체 고리가 너무 깊게 접혔어요.”
네아가 말했다.
“명령만 떼려면 각 사람의 현재 기억을 따로 고정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항구 전체라면 하루.”
해는 이미 마른 등대의 끝에 닿고 있었다.
오르나가 정한 시한이었다.
종루 아래에서 아이 하나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배를 타면 집에 언제 와?”
어머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지막 출항 명부에는 귀항 역할이 없었다.
나는 바닥에 열린 고리를 그리고 검은 퇴비를 채웠다. 네아가 무광 집게 여섯 개를 파편 주변에 세웠다.
“하루는 못 벌어도 다음 종은 막을 수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얼마나요?”
“반 각.”
“그 안에 항구 사람들을 전부 고정할 수는 없어요.”
“반복되는 사람부터 멈춥니다.”
네아는 종루 밖의 같은 자세들을 세었다. 마른 돛을 펼치는 여자, 아이를 옮기는 남자, 불을 끌 준비를 하는 사브. 모두 자기 삶과 무관한 동작에 붙들려 있었다.
우리는 첫 사람부터 현재의 흔적을 호명했다.
천막장이의 손에는 딸의 혼례복을 꿰매다 바늘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소금 창고 주인의 어깨에는 오늘 아침 업어 준 이웃 아이의 진흙이 묻었다. 사브의 소매에서는 귀항불을 나눠 붙인 집들의 재 냄새가 났다.
항로목의 뿌리가 그 흔적들을 감쌌다.
네아는 사람마다 파편으로 들어가는 방향 하나만 집어 끊었다. 증여된 기술과 살아온 기억은 남기고, 마지막 출항의 다음 동작만 멈췄다.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씩 자세를 풀었다.
“왜 자루를 메고 있지?”
“내가 종루까지 어떻게 왔지?”
누군가는 집으로 달려갔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르나는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봤다.
“의지가 아니었군요.”
도린이 말했다.
“전부는 아닙니다.”
오르나의 목소리는 낮았다.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바다가 없는 항구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도, 이 기억을 끝내고 싶은 사람도.”
“그 마음까지 막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가 없죠.”
“만들 겁니다.”
도린이 대답했다.
“돌아올 수 있는 배를.”
마른 등대 위로 해가 반쯤 내려갔다.
우리는 스물세 명의 반복을 멈췄다. 그러나 항구에는 수백 명이 있었다. 파편의 여섯 홈은 끊은 방향보다 더 많은 방향을 만들었다. 한 사람을 풀어 줄 때마다 다른 거리에서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명부는 역할을 비워 두지 않았다.
오르나가 종루 계단을 올랐다.
사브가 앞을 막았다.
“내가 네 어머니에게 불을 가르쳤다.”
“압니다.”
“그 아이는 마지막 날까지 귀항불을 지켰다. 떠나라고 가르친 적은 없어.”
“어머니는 바다가 돌아오는 걸 못 봤어요.”
“그래서 네가 사람을 바다 없는 곳으로 보내려는 거냐?”
오르나는 사브를 밀지 않았다. 대신 명부에서 ‘귀항불을 끌 사람’의 판을 뽑아 자기 허리에 찼다.
“제가 마지막으로 끄겠습니다.”
“그 불은 네 것이 아니다.”
“그럼 아무도 끄지 못하게 지키세요.”
오르나는 종루 바깥 난간으로 몸을 돌렸다. 뿌리가 벽을 타고 올라와 그녀의 발밑에 길을 만들었다.
네아가 집게를 던졌다.
무광 끝이 종의 추에 박혔다. 불꽃이 튀며 쇠의 진동을 삼켰다. 나는 파편과 종을 잇는 물길을 눌렀다.
오르나가 줄을 당겼다.
종은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거리의 사람들도 멈췄다.
반 각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른 해저에서 종소리가 돌아왔다.
우리가 막은 것은 모렌 종루의 현재 소리였다. 에르바의 마지막 날에 울렸던 출항종이 수림 아래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첫 울림은 물이 없는 우물에서 솟았다.
둘째는 항로목의 모든 나이테를 통과했다.
셋째는 명부의 여섯 구멍을 지나 주민들의 발바닥에 닿았다.
오르나가 잡은 줄도 함께 떨렸다.
이번에는 그녀도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한 번만 당겼어요.”
거리의 문들이 한꺼번에 열렸다.
멈췄던 스물세 명도, 아직 호명하지 못한 사람들도 마른 바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울거나 저항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오래 미뤄 둔 일을 드디어 시작하는 얼굴이었다.
도린의 오른발도 다시 반 걸음 뒤로 빠졌다. 그는 여섯 번째 접합부를 물어뜯을 듯 붙잡고 버텼다.
“저쪽에 배가 있습니다.”
항구 끝의 안개가 갈라졌다.
물 한 방울 없는 해저 위에 수십 척의 배가 떠 있었다. 선체는 물이 아니라 되풀이된 출항 동작으로 지탱됐고, 돛에는 떠난 적 없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었다.
가장 앞의 기함 함수에는 닫히지 않은 결속부가 검은 입처럼 벌어져 있었다.
오르나는 종의 줄을 놓았다.
그러나 마지막 출항은 이미 항구를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