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룬2장

6화. 항구가 빚진 이름들

라엔의 기록에는 결론이 없었다.

봉인 끈도, 기록원의 판정문도 없었다. 헤아린에서 온 전달자는 얇은 점토판 여섯 장과 짧은 쪽지 한 장만 건넸다.

「모렌 해안 초기 조사 원본. 순서는 판 가장자리의 파손으로 확인할 것. 해석하지 않음.」

마지막에는 라엔의 열린 고리만 눌려 있었다.

“정말 아무 말도 안 했네요.”

네아가 점토판을 빛에 비췄다.

“전에는 말이 너무 많았습니까?”

“말하지 않은 것도 많았습니다.”

나는 첫 판의 깨진 가장자리를 둘째 판과 맞췄다. 라엔이 순서까지 대신 적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직접 접합을 확인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기록은 모렌항이 세워지기 전, 피난민들이 에르바의 잔해를 처음 발견한 때부터 시작됐다.

「해저 수림에서 선체 제작 동작 반복. 접근한 세 명이 매듭과 조수 감각을 습득함. 기억 전달은 강제되지 않으며 뿌리에서 손을 떼면 중단됨.」

다음 판에는 항로목 가지를 현재 목재에 접붙이는 과정이 기록돼 있었다. 사람들은 기술을 받기 전에 빈 수피 조각을 뿌리에 끼웠다. 배운 뒤 자기 손으로 바꾼 내용을 그 조각에 다시 남겼다.

받는 일과 돌려주는 일이 같은 배열 안에 있었다.

“채무라기보다 교환에 가깝군요.”

도린이 말했다.

셋째 판부터는 같은 기록을 서로 다른 사람이 덧대어 남겼다. 처음 접붙이기를 배운 피난민은 항로목의 가지를 잘라 돛대 숲에 묻었고, 그 딸은 가지가 새 흙에서 살아남은 해를 표시했다. 손자는 조수 노래가 모렌의 얕은 만에서는 반 박자 늦어야 한다고 수정했다. 증손자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도 쓸 수 있도록 바닥을 두드리는 박자를 곁들였다.

에르바의 기술은 온전한 모양으로 보존된 적이 없었다.

세대를 지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고, 달라졌기 때문에 모렌에서 살아남았다.

넷째 판 한쪽에는 작은 균열이 있었다. 나는 손톱으로 그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금이 간 뒤 새긴 조사 기록은 주변보다 얕았다.

「증여 고리 아래에서 별도 압력 여섯 점 확인. 접목 기록과 연결되지 않음. 제거를 시도하자 항구 주민 열두 명이 방향 감각을 잃음. 원위치함.」

그 밑에는 조사자가 바뀐 흔적이 있었다.

「여섯 점은 기술을 담지 않는다. 기술 사이의 순서만 한쪽으로 고정함.」

마지막 판에는 짧은 경고가 덧붙어 있었다.

「해석자가 목적을 추정하지 말 것. 압력의 방향과 결과만 기록할 것.」

라엔은 그 문장을 그대로 보낸 셈이었다. 어느 것이 선의고 어느 것이 함정인지 정리해 주지 않았다. 예전 같았다면 그 침묵부터 의심했을 것이다. 지금도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나는 점토판의 파손면과 안료의 깊이부터 확인했다. 여섯 장은 모두 같은 해저 진흙으로 구웠고, 마지막 경고만 다른 칼끝으로 새겨져 있었다.

“라엔의 글씨입니까?”

네아가 물었다.

“아닙니다. 적어도 이 판들을 만든 사람의 글씨는 아니에요.”

“그럼 믿습니까?”

“기록이 서로 맞는 부분만.”

나는 판들을 원래 순서대로 바닥에 놓았다. 맞물린 파손면을 따라 증여의 흐름은 바깥으로 퍼졌지만, 여섯 압점만 모든 기록을 거슬러 항구 안쪽을 향했다.

라엔이 결론을 보내지 않은 덕분에 우리도 그의 의도를 결론으로 삼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뜻밖에도 마음을 가볍게 했다.

오르나는 마지막 출항 명부를 무릎 위에 둔 채 기록을 읽었다.

“돌려줘야 한다면 빚이 맞습니다.”

“같은 걸 돌려준 게 아닙니다.”

“더 나은 것을 남겼다고 해서 처음 받은 것을 갚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죠.”

“에르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볼 방법이 있습니까?”

오르나는 항로목 아래를 가리켰다.

“가장 깊은 나이테에 증여실이 있습니다.”

그곳은 귀향 잔영이 나온 뒤 뿌리에 막혀 있었다. 오르나는 마지막 명부의 목판을 접점에 끼워 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사브에게 귀항불을 맡기고 돛대 숲 중심으로 갔다. 도린은 다섯 부품 중 닫히지 않은 함수 결속부를 들고 왔다. 여섯 번째 접합을 만들 재료를 항로목에서 찾겠다고 했다.

증여실 입구는 거대한 나이테 한가운데 있었다.

사람 키보다 큰 단면에 수백 개의 손자국이 눌려 있었다. 어떤 손은 손가락이 부러졌고, 어떤 것은 아이처럼 작았다. 손자국 사이에는 매듭 구멍, 나무못과 조개 가루가 서로 다른 깊이로 박혀 있었다.

글자는 아니었다.

누가 어떤 기술을 얼마나 강하게 남겼고, 다음 사람이 어느 부분을 바꿔 돌려줬는지 압력으로 이어진 기록이었다.

오르나가 명부의 첫 목판을 단면에 댔다.

구멍 세 개가 뿌리의 매듭과 맞았다. 나이테가 양쪽으로 벌어지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증여실 안에는 배가 한 척 있었다.

완전한 선체가 아니라 뿌리와 기억으로 만든 골격이었다. 용골, 돛대와 방향타 자리에 서로 다른 나무가 접붙어 있었고, 각 부품 옆에는 인간 언어로 쓴 작은 목판들이 매달려 있었다.

도린이 첫 판을 읽었다.

「얕은 물의 길을 남긴다. 다음 사람은 모래톱이 바뀌면 이 길을 버려도 된다.」

둘째 판에는 구조 매듭이 그려져 있었다.

「끊어지지 않은 줄보다 풀 수 있는 줄이 사람을 살린다. 손에 맞게 바꾸어라.」

셋째에는 돛대 이음이 있었다.

「우리의 배는 이곳에서 끝난다. 목재가 남으면 새 배에 사용하라.」

명령이 아니었다.

에르바 사람들은 후대가 자기 항로를 버릴 가능성까지 기록했다.

“마지막 판을 보세요.”

네아가 골격 함수의 목판을 들어 올렸다.

「돌아오지 못한 이름을 따라오지 마라. 우리가 남긴 것은 길을 만드는 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오르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 판은 명부에 없습니다.”

“누군가 뺀 겁니까?”

“아니요. 명부는 항로지기에게 온전히 전해졌습니다.”

오르나는 목판의 나뭇결을 만졌다.

“이건 출항 뒤에 새겨졌어요. 마지막 배가 떠나지 못했다면 누가 남겼죠?”

증여실의 물이 움직였다.

바닥에는 발목 높이의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목판을 읽는 동안 잔잔했지만, 이제 글자 사이의 검은 안료가 물속으로 흘러내렸다.

‘남긴다’라는 글자에서 검은 실이 나왔다.

실은 물속에서 휘어 ‘갚는다’가 새겨진 다른 목판으로 이어졌다. ‘바꾸어라’는 안료가 벗겨지고 그 아래 ‘완성하라’는 오래된 글자가 나타났다.

기록이 우리 눈앞에서 의미를 바꾸고 있었다.

“판을 떼세요!”

네아가 외쳤다.

도린이 목판을 잡았지만 검은 실이 손목을 감았다. 골격 배의 뿌리들이 일어나 사람 형상을 만들었다. 몸은 증여 목판과 매듭으로 엮였고, 얼굴에는 현재 주민들의 이름이 겹쳐 쓰였다.

봉인 잔영은 기록을 삼키지 않았다.

자발적 증여 뒤에 채무의 문장을 덧붙였다.

첫 형상이 도린에게 얕은 용골을 내밀었다.

“받았으니 갚아라.”

둘째는 삼중 매듭을 목에 걸었다.

“살았으니 대신 떠나라.”

셋째는 접이식 돛대를 들어 증여실 출구를 막았다.

“이름을 받았으니 이름대로 살아라.”

오르나가 명부를 펼쳤다.

“명부의 문장과 같습니다.”

“원래부터 있던 문장입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검은 실들이 명부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출항 역할마다 새겨진 의무 문장이 증여실의 봉인과 같은 압력으로 당겨졌다.

네아가 검은 퇴비를 물에 뿌렸다.

안료 일부가 흙에 스며들었지만 형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목판 자체에 인간의 손으로 쓴 문장이 남아 있었다.

“글자를 없애면 원래 증여 기록도 지워집니다.”

“없애지 않습니다.”

네아는 무광 집게로 검은 실 하나만 집었다.

“앞과 뒤를 연결한 방향을 끊어요.”

나는 첫 증여 목판을 골격에서 떼지 않고 압력을 읽었다. 에르바 사람이 글자를 새길 때 칼은 바깥으로 움직였다. 자기 손에서 다음 사람에게 밀어 주는 방향이었다.

채무 문장은 반대였다.

다음 사람의 이름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같은 글자와 나무를 사용해도 압력이 달랐다.

“도린, 받은 기술로 같은 부품을 만들지 마세요.”

“지금요?”

“지금 바꾼 것을 남겨야 합니다.”

도린은 닫히지 않은 함수 결속부를 골격 배 앞에 놓았다. 다섯 기억의 청동 턱 사이에 있던 나무쐐기를 뽑지 않았다. 대신 항로목의 밝은 수피를 깎아 두 턱 바깥을 잇는 고리를 만들었다.

“이건 닫는 부품이 아닙니다.”

도린이 말했다.

“다음 부품을 붙일 자리를 유지하는 접합입니다.”

여섯 번째 접합부가 완성됐다.

봉인 잔영들이 도린 쪽으로 달려들었다. 받은 기술을 다섯 번째 기억의 출항에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섯 번째 접합부를 증여실 바닥에 놓았다. 네아가 검은 실을 그 바깥 고리에 걸었다.

“받은 것은 다음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호명했다.

“바꾼 것은 이전 사람의 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네아가 집게를 닫았다.

검은 실들이 한꺼번에 끊겼다.

형상들의 몸에서 채무 문장이 떨어졌다. 목판은 부서지지 않았다. ‘남긴다’, ‘바꾸어라’, ‘사용하라’는 원래 문장은 그대로 남았다.

증여실의 물이 맑아졌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수십 개의 소리가 겹쳐 내려왔다. 망치가 못을 놓치고, 밧줄이 바닥에 떨어지고, 조수 노래가 중간에서 끊겼다.

우리는 급히 지상으로 올라갔다.

돛대 숲에서는 주민들이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노인은 방금 전까지 깎던 노를 거꾸로 쥐었고, 소금배 선주는 매듭을 풀어 놓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혼란은 길지 않았다. 증여실에서 보존한 바깥 방향의 압력이 뿌리를 따라 돌아오자 손들이 다시 움직였다.

노인은 노의 손잡이를 두 번 만지고 깎던 면을 찾았다. 선주는 매듭을 완성한 뒤 일부러 마지막 고리를 느슨하게 남겼다.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맵니다.”

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옛 구조 매듭과 달리 손가락 둘을 넣으면 곧바로 풀리는 모렌식 고리였다.

모아는 대패를 든 채 우리 앞에 섰다. 네아가 나이테 하나를 통째로 잠재웠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딸에게 배운 손놀림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각도도 기억하고 있었다.

“무언가 빠져나갔어요.”

“무엇이 빠졌습니까?”

“일을 끝내면 바다 쪽으로 가야 한다는 기분.”

모아는 자기가 만든 돛대가 아니라 집 쪽을 바라봤다.

“기술은 남았는데 명령만 사라졌군요.”

네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항구 아래에서 더 큰 당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증여실에 붙은 작은 채무 고리는 끊었지만, 모든 고리를 한 방향으로 묶은 근원은 아직 남아 있었다.

뿌리 형상들은 작은 접목꾼 모습으로 줄어들었다. 하나가 여섯 번째 접합부를 들어 골격 배의 빈 함수에 대었다. 완전히 맞지 않았다.

도린이 웃었다.

“당연하지. 저 배에 쓰려고 만든 게 아니니까.”

접목꾼은 부품을 돌려주었다.

오르나는 마지막 목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돌아오지 못한 이름을 따라오지 마라.”

그녀가 천천히 읽었다.

“그럼 명부는 왜 남겼죠?”

“떠나는 순간 사람을 살리기 위한 역할표였을 수 있습니다.”

“그 역할을 끝내지 못해서 에르바가 가라앉았다면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나는 확신 없는 부분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후대에게 같은 역할을 요구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르나는 명부와 증여 목판을 나란히 놓았다. 둘의 나무 종류도, 구멍을 뚫은 도구도 같았다. 그런데 명부의 압력은 안쪽으로 향했고 증여 기록은 바깥으로 열려 있었다.

“누군가 명부의 방향을 바꿨군요.”

도린이 말했다.

오르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항로목이 마지막 출항을 끝내려고 스스로 바꾼 겁니다.”

그녀는 여전히 출항을 의무로 믿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 의무가 에르바 사람의 뜻과 같지 않을 가능성을 보았다.

증여실을 나오기 전 네아가 아까 집게로 끊었던 검은 실의 잔해를 검은 퇴비에 묻었다.

“항로목 전체를 잠재웠다면 이 기록도 못 봤겠죠.”

“모아의 기술도 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출항 방향은 아직 남았습니다.”

네아가 나이테 안쪽을 가리켰다.

검은 압력은 명부를 따라 증여실 밖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채무 봉인을 해제했는데도 항구 쪽으로 당기는 힘은 더 강해졌다.

도린이 여섯 번째 접합부를 가슴에 안았다.

“기억을 전부 끊으면 저 힘도 사라지지 않습니까?”

“그 대신 배를 만드는 손도 사라집니다.”

모아에게 일어났던 일이 항구 전체에 퍼질 것이다. 조수 노래, 구조 매듭, 귀항불을 다루는 법까지 잃을 수 있었다.

지상에서 종이 한 번 울렸다.

오르나가 명부를 챙겨 먼저 일어났다.

“그럼 기억을 가진 채 출항을 끝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르나.”

도린이 불렀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증여실 입구가 닫히기 직전, 마지막 목판의 나뭇결 사이에서 검은 압점 여섯 개가 떠올랐다.

헤아린의 첫 룬 파편이 남긴 이음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