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2장 · 4화
4화. 뿌리에 접붙인 항로
잔영기록자 · 한국어
모렌항의 집들은 숲에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숲이 집 안에 자라고 있었다.
해저 등대에서 올라온 뒤 우리는 항구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의 바닥을 뜯었다. 도린이 판자 하나를 들어 내자 검은 뿌리가 기둥 아래를 지나 벽과 작업대, 배를 끌어올리는 경사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뿌리는 나무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래된 목재의 갈라진 틈에 새 수피를 채우고, 부러진 기둥을 안쪽에서 이어 붙였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 집의 나무이고 어느 쪽이 살아 있는 뿌리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여기에도 있습니다.”
도린이 작업대 모서리를 칼로 얇게 긁었다.
송진 아래에서 나이테가 나타났다. 바깥쪽 세 고리는 조선소 기둥과 같은 색이었다. 그 안쪽에는 바닷물에 검게 변한 고리들이 수십 겹 박혀 있었다.
“에르바 항로목을 잘라 조선소를 세운 겁니까?”
“잘라낸 게 아닙니다.”
도린은 칼끝으로 가느다란 연결을 가리켰다.
“접붙였어요. 모렌항 목재를 옛 뿌리에 붙인 겁니다.”
조선소 밖에서도 같은 흔적이 나왔다. 어망 창고의 들보, 소금 건조대와 주민들의 식탁까지 검은 뿌리에 닿아 있었다. 모렌항 전체가 하나의 오래된 나무에 접붙은 가지처럼 보였다.
네아는 항로목 위에 검은 퇴비를 한 줌 올렸다.
가루가 나이테마다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안쪽 고리에서는 바다 쪽으로, 바깥 고리에서는 항구의 집과 골목 쪽으로 움직였다.
“출항 공명은 안쪽에서 올라옵니다.”
그녀가 무광 집게를 꺼냈다.
“가장 오래된 고리 하나를 잠재우면 주민에게 가는 방향도 끊을 수 있어요.”
“기술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출항 충동이 다시 시작되면 주민들이 잔영선에 오릅니다.”
“어느 고리가 기술인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확인하는 동안 종이 울리면요?”
네아는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다. 집게 끝을 안쪽의 검은 고리 사이에 넣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1장에서 라엔을 막은 뒤, 타인이 내 판단을 대신 정하는 일을 경계했다. 그런데 지금은 네아가 잘못할 가능성을 이유로 내가 그녀의 손을 막으려 했다. 질문하는 것과 대신 결정하는 것은 손을 뻗는 순간 비슷해질 수 있었다.
“한 고리만.”
내가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는지 보고 바로 풉니다.”
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게가 닫혔다.
조선소 안의 망치 소리가 사라졌다.
실제로 누군가 일하던 것은 아니었다. 벽과 작업대에 남은 수십 년의 두드림이 늘 낮게 울리고 있었는데, 그 공명이 한순간 끊겼다.
밖에서 나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경사로로 달려갔다.
나이 든 조선공 모아가 작은 어선 앞에 서 있었다. 발치에는 대패가 떨어져 있었다. 그는 자기 손을 처음 보는 물건처럼 뒤집어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도린이 물었다.
“모르겠다.”
모아가 배를 가리켰다.
“저걸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모르겠어.”
어선의 옆면에는 손바닥 길이의 균열이 있었다. 모아는 평생 같은 크기의 배를 수리했다. 도린에게 첫 대패질을 가르친 사람도 그였다.
“나무 종류는요?”
“나무?”
“결을 보세요.”
도린이 모아의 손을 선체에 올려놓았다. 모아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나무의 습기와 균열 방향을 읽던 버릇이 사라졌다.
네아가 조선소 안으로 돌아가 집게를 풀었다.
망치 공명이 되살아났다.
모아는 숨을 들이마시며 균열을 만졌다.
“바깥 판부터 떼야 해. 안쪽 갈빗대가 먼저 젖었어.”
기술이 돌아왔다.
그는 무릎에 힘이 풀린 듯 배에 기대었다.
“방금 내 손이 비었어.”
네아는 집게를 허리에 넣지 못했다.
“미안합니다.”
모아가 그녀를 바라봤다.
“뭘 한 거요?”
“뿌리의 오래된 기억을 잠재웠습니다.”
“내 손이 옛날 사람 손이란 말인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내가 대답했지만 모아는 자기 손만 봤다.
항로목의 안쪽 고리 하나가 조선 기술 전체와 연결돼 있었다. 옛 에르바 목수의 감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모아는 그 감각으로 수십 년 동안 배를 고쳤고 도린을 가르쳤다. 어디까지가 에르바의 기억이고 어디부터 모아의 기술인지 고리 하나로 나눌 수 없었다.
“다시 확인해야 해요.”
네아가 말했다.
“이번에는 끊지 않고.”
우리는 조선소의 항로목 단면에 얇은 수피 조각들을 꽂았다. 각 나이테의 압력을 다른 조각으로 옮겨 읽기 위한 배열이었다. 도린은 모아가 쓰던 대패의 쇳가루를 바깥 고리에 뿌렸다.
안쪽 첫 고리에서 얕은 용골을 다듬는 손동작이 나타났다.
둘째에는 젖은 밧줄을 말리는 방법이, 셋째에는 부러진 돛대를 잇는 망치 각도가 남아 있었다. 에르바 항해 기억과 도린의 다섯 부품에 있던 기술이었다.
바깥으로 갈수록 동작은 달라졌다.
옛 목수는 대패를 몸 바깥쪽으로 밀었지만 모아의 고리에서는 안쪽으로 당겼다. 에르바의 나무못은 소금물에 불려 박았지만 모렌항 사람들은 수피 기름에 삶았다. 도린이 추가한 빗물 홈도 가장 바깥의 밝은 고리에 얇게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같은 고리를 따라 항구의 집 세 곳을 더 확인했다.
첫 집의 식탁 아래에서는 생선을 소금에 절이는 손동작이 나타났다. 안쪽 고리의 에르바 사람은 생선을 배부터 갈랐지만, 현재 집의 주인은 등부터 칼을 넣었다. 모렌항의 여름이 더 습해 배 쪽 살이 쉽게 무르기 때문이었다.
둘째 집의 창틀에서는 방수 매듭이 재현됐다. 옛 매듭은 세 번 감고 한 번 꺾었지만, 현재 것은 마지막 고리를 느슨하게 남겼다. 아이도 폭풍 때 맨손으로 풀 수 있게 고친 방식이었다.
셋째 집에서는 조수 높이를 외우는 노래가 나이테 사이로 울렸다. 에르바의 음은 낮고 느렸고, 모렌항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마지막 박자가 짧았다. 바닷물이 돌아오는 시간이 세대마다 조금씩 달라지면서 박자를 고친 것이다.
모아가 노래를 듣다 말했다.
“어릴 때는 마지막 소절이 더 길었어.”
“누가 바꿨습니까?”
“모르지. 어느 해부터 다들 짧게 불렀으니까.”
기억은 한 사람에게서 다음 사람으로 완전한 모양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틀린 부분은 몸이 먼저 불편해했고, 누군가 손을 한 번 다르게 움직였다. 그 변화가 이웃에게 전해지고 아이들의 노래가 됐다.
네아가 안쪽 나이테에 집게를 가까이 댔다.
집 주인이 칼을 놓쳤다.
집게가 닿지도 않았는데 손이 옛 절임 동작으로 돌아갔다. 현재 방식이 사라지자 습한 날에 맞지 않는 칼질이 생선 내장을 터뜨렸다.
네아는 즉시 집게를 거뒀다.
“안쪽 기억만 남겨도 위험하군요.”
“오래됐다고 원형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때의 환경에 맞았던 방법일 뿐이에요.”
“기록원에서는 원형을 먼저 보존하죠.”
“그래서 원형이 사람보다 앞설 때가 있습니다.”
라엔의 보고서를 떠올렸지만 이름은 꺼내지 않았다. 네아도 누구를 말하는지 알았다.
“무명회는 아픈 부분부터 잘라 냅니다.”
“그래서 이어진 부분까지 끊을 때가 있고요.”
“둘 다 편한 방법이네요.”
네아가 씁쓸하게 웃었다.
“한쪽은 처음 모습을 진실이라고 부르고, 한쪽은 마지막 상처를 전부라고 부르니까.”
도린이 창틀의 느슨한 매듭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그럼 누가 정합니까? 어느 변화가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지.”
“지금 쓰는 사람이요.”
내 대답에 도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도 기억에 끌리고 있다면?”
“혼자 정하지 않게 해야겠죠.”
나는 네아가 집게를 거둔 자리, 모아가 대패를 다시 잡은 손과 도린이 고친 홈을 차례로 봤다.
“결과를 겪는 사람이 확인하고, 다른 사람이 틀린 방향을 말해 주는 겁니다.”
말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느리고 불완전한 방식인지 알았다. 그러나 빠르고 완전한 방법이 사람의 다음 행동을 지우는 것을 이미 봤다.
항구의 종이 멀리서 낮게 떨렸다.
아직 울린 것은 아니었다. 출항 공명이 나이테 안쪽을 지나며 청동을 건드린 진동이었다. 집집의 뿌리가 같은 방향으로 긴장했다.
현재의 변화들은 옛 기억과 얽혀 있었고, 출항 명령도 그 연결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기술은 그대로 복사되지 않았다.
사람을 거칠 때마다 달라졌다.
“이 바깥 고리만 남길 수 있습니까?”
도린이 물었다.
네아는 집게를 들지 않았다.
“안쪽을 지우면 바깥 고리가 무엇을 바꿨는지도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럼 아무것도 못 끊잖아요.”
“기억이 아니라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네아가 내게서 배운 말을 되돌려 주었다.
항로목이 갑자기 떨렸다.
내부의 고리들이 바다 쪽으로 한꺼번에 기울었다. 조선소 기둥과 작업대가 같은 방향으로 휘어졌고, 부두의 배들이 육지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항해 기술들이 출항 명령과 함께 움직였다.
대패가 바닥을 긁어 배 밑에 길을 냈고, 밧줄은 스스로 돛대를 세웠다. 망치들이 청동못을 두드리며 선체의 틈을 닫았다. 기술은 사람을 돕는 대신 빈 배를 출항 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조선소에서 나가세요!”
도린이 주민들을 밀어냈다.
뿌리가 바닥을 뚫고 솟았다. 검은 수피로 된 팔들이 도구를 집어 들었다. 얼굴 없는 목수 잔영들이 배 주위에 줄을 섰다. 한 형상은 모아의 대패질을, 다른 형상은 도린의 망치 자세를 사용했다.
과거와 현재의 기술이 출항 방향 안에서 섞였다.
네아가 침묵 매듭을 들었다.
“전체를 닫지 않겠습니다.”
“그럼 무엇을 묶죠?”
“바다를 향한 기울기.”
그녀는 끈을 뿌리에 감지 않고 조선소 바닥의 경사로 양끝에 걸었다. 빈 배가 미끄러지는 방향만 붙들었다.
나는 수피 조각들을 각 나이테에 다시 꽂았다. 기술을 고리별로 떼어 내지 않고 흐르는 순서를 읽었다.
옛 용골 기술은 모아의 대패질로 이어졌고, 모아의 손은 도린의 빗물 홈으로 이어졌다. 현재를 빼면 과거 기술은 빈 동작이었고, 과거를 빼면 현재의 변화가 무엇을 고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받은 것은 안쪽에.”
첫 수피 조각을 눌렀다.
“바꾼 것은 바깥에.”
둘째와 셋째 조각을 바깥 고리에 놓았다.
“떠날 방향은 어느 고리에도 고정하지 않는다.”
마지막 조각을 나이테 바깥, 현재 조선소 바닥에 내려놓았다.
도구를 든 뿌리 목수들이 멈췄다.
형상들은 대패와 망치를 내려다봤다. 출항 방향을 잃었지만 기술까지 잃지는 않았다. 한 형상이 빈 배를 밀어내는 대신 기울어진 조선소 기둥을 받쳤다. 다른 형상은 도린이 파 놓은 빗물 홈에서 물을 긁어 냈다.
기억의 쓰임이 바뀌었다.
도린과 모아가 경사로의 배를 부두 쪽으로 돌렸다. 네아는 침묵 끈의 양끝을 조금씩 풀어 배가 제자리로 돌아올 공간을 만들었다.
조선소의 기울기가 가라앉았다.
뿌리 목수들은 수피 조각으로 무너졌다. 나이테마다 기술은 남았고, 바다 쪽으로 쏠리던 압력만 바닥의 빈 조각으로 옮겨졌다.
네아는 집게를 내려다봤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어요.”
“처음에는 어느 방향인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모아의 손을 지웠죠.”
“다시 돌려놨습니다.”
“돌아오지 않았다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라엔은 사람을 지키려 했다는 말로 결과를 대신 설명했다. 나는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면 우리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기억을 돌려주는 걸로 끝나지 않는 책임이겠죠.”
“그 사람이 정하는 만큼.”
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아는 우리 대화를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어선의 균열을 다시 살핀 뒤 대패를 도린에게 건넸다.
“이 배를 한번 만져 봐.”
도린이 갈빗대 위치를 찾지 못해 손을 옮기자 모아가 선체의 작은 흠집으로 이끌었다.
“네가 열두 살 때 처음 망치를 놓쳐 만든 자국이다.”
도린은 손끝으로 움푹 팬 자리를 찾았다.
모아가 다시 눈을 감았다.
“내 손이 또 비어도 저건 알 것 같구나.”
“배 고치는 법은 몰라도요?”
“그날 네가 울다가 이 배 뒤에 숨은 건 기억하겠지.”
기술과 함께 전해진 기억이 아니었다. 둘이 같은 배 곁에서 만든 일이었다.
도린은 흠집 옆에 손바닥을 놓았다. 항로목의 가장 바깥 나이테가 같은 압력으로 따뜻해졌다.
“여섯 번째 접합부를 여기에 맞춰야겠어요.”
“어느 배의 기억이지?”
모아가 물었다.
“아직 없는 배요.”
도린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가장 바깥 나이테에서 새 고리 하나가 천천히, 아주 또렷하게 자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