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2장 · 3화
3화. 물속에서 타는 등대
잔영기록자 · 한국어
등대는 바다 아래에서 타고 있었다.
사브는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우리를 돛대 숲으로 데려갔다. 주민들이 다시 종소리를 듣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도린도 따라왔다. 다섯 부품은 조선소에 남겼지만 닫히지 않은 함수 결속부에서 떼어 낸 나무쐐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 질문에 사브는 불갈고리로 진흙을 짚었다.
“돌아오는 곳.”
“바다는 저쪽입니다.”
도린이 수평선을 가리켰다.
“나도 평생 그렇게 생각했지.”
사브는 항구 쪽으로 뻗은 뿌리 하나를 따라갔다.
돛대 숲 안에서는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난파선 기둥들이 현재의 그림자와 다른 방향으로 누워 있었다. 해는 동쪽에서 떴는데 수피 위의 검은 그을음은 북쪽으로 길게 늘어졌다. 뿌리 사이에는 바닷물이 작은 웅덩이로 남아 있었다.
웅덩이마다 파도가 들어오는 모습이 비쳤다.
실제 수평선에는 물이 없었다. 그러나 웅덩이 속 모렌항에는 배들이 귀환하고 있었다. 찢어진 돛, 부러진 노와 검은 연기에 덮인 선체들이 부두에 닿았다. 사람들이 뛰어나와 부상자를 내리고 젖은 옷을 벗기며 화로를 피웠다.
“출항 기억과 반대입니다.”
내가 말했다.
“반대라기보다 뒤쪽이죠.”
네아가 웅덩이에 무광 집게를 담갔다.
“떠나는 기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돌아와 불을 쬔 자리까지 이어졌습니다.”
“모든 배가 돌아온 건 아니오.”
사브가 앞에서 말했다.
“그래서 기다리는 불이 필요했지.”
숲 가운데에는 다른 돛대보다 굵은 돌기둥이 기울어져 있었다. 나무껍질과 따개비 아래에서 흰 석재가 드러났다. 사브가 밧줄을 걷어 내자 나선 계단이 보였다.
등대의 꼭대기가 진흙 아래에 묻혀 있었다.
우리는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등대 꼭대기에서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 벽에는 오래된 그을음과 수위 자국이 번갈아 남았다. 물에 잠겼던 층은 소금으로 희었고, 불이 탔던 층은 검었다. 가장 아래에는 둥근 방이 있었다.
방 절반은 물로 가득했다.
수면 아래에서 주황빛 불이 타고 있었다.
불꽃은 위로 솟지 않았다. 물의 흐름을 따라 옆으로 누웠고, 돌화로 안쪽을 한 바퀴 돈 뒤 다시 중심으로 모였다. 기름막도 장작도 없었다. 화로 바닥의 돌과 청동못, 그 사이에 낀 검은 수피가 열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브가 무릎을 꿇었다.
“귀항불이오.”
그가 불갈고리를 물속에 넣었다. 불은 갈고리를 타고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사브의 손이 닿은 부분만 따뜻해졌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등대지기가 된 날부터.”
“모렌항 사람들에게 왜 말하지 않았죠?”
사브는 수면 속 불을 바라봤다.
“오르나가 마지막 출항을 준비하기 시작한 뒤에는 말할 수 없었소. 이 불이 있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기다리기만 할 거라고 했지. 떠나야 살 수 있는데 돌아올 곳부터 생각하면 배를 못 띄운다고.”
“사브 씨도 그렇게 믿었습니까?”
“믿고 싶었지.”
그는 갈고리 끝의 그을음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기다리는 일보다 떠나는 일이 용감해 보이니까.”
도린은 화로 가까이 웅크렸다. 물속 장면에 작은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선체 옆면이 갈라졌고 돛대는 임시 이음으로 붙어 있었다.
“세 번째 배입니다.”
“곡물선?”
“돌아왔군요.”
도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억은 부러진 돛대를 수리한 순간에서 끝났다고 했다. 귀항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귀항불은 배가 들어온 뒤 주민들이 곡물 자루를 내리고 목수의 손목에 따뜻한 천을 감아 준 일까지 기억했다.
“왜 내 기억에는 없었지?”
“받은 것이 항해 기술뿐이어서일 수 있습니다.”
“돌아온 뒤는 기술이 아니니까?”
“누군가 분리했을 수도 있고요.”
네아가 화로 가장자리의 청동못을 살폈다. 못들은 원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항구 쪽에 해당하는 한 부분이 넓게 비어 있었다. 불을 가두는 배열이 아니라 바깥에서 들어올 틈을 남긴 배열이었다.
헤아린의 완벽한 미래와 반대였다.
그때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긴 외투를 입은 여성이 방으로 내려왔다. 허리에는 크기가 다른 조수추 열두 개가 매달려 있었고, 손에는 얇은 목판 묶음이 들려 있었다.
“사브.”
사브의 어깨가 굳었다.
“결국 열었군요.”
“언젠가는 열어야 했어.”
여성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모렌항 항로지기 오르나입니다.”
오르나는 예의를 지켰지만 눈은 물속 화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기록원과 무명회가 함께 왔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귀항불까지 찾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군요.”
“왜 숨겼습니까?”
“항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물이 돌아오지 않았는데도요?”
“마지막 출항이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오르나는 목판 묶음을 펼치지 않았다. 가장자리에 뚫린 구멍들과 매듭 위치만 손으로 확인했다.
“에르바 사람들은 떠나야 했습니다. 승선 역할까지 정했지만 마지막 배는 출항하지 못했죠. 그 기억이 모렌항 아래에 남아 물의 방향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주민들이 대신 떠나야 한다?”
네아가 물었다.
“대신이 아닙니다.”
오르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우리가 그 기억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들의 항로와 기술로 이 항구를 세웠으니 마지막 의무도 우리 것입니다.”
도린이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다섯 항해도요?”
“항로목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기억을 줍니다.”
“필요한 목적지도 줍니까?”
오르나는 답하지 않았다.
물속 귀항불이 갑자기 낮아졌다.
화로 위로 검은 재가 떨어졌다. 계단이나 천장에서는 오지 않았다. 수면에 비친 출항 장면에서 솟은 재였다. 마른 바다 위의 사람들이 화로를 뒤집고, 등대 문을 닫으며, 돌아오는 길을 표시한 밧줄을 자르고 있었다.
“물러나시오!”
사브가 불갈고리를 휘둘렀다.
수면에서 화염 형상들이 올라왔다.
불은 귀항불과 같은 주황빛이 아니었다. 소금기 때문에 가장자리가 희었고 중심은 검었다. 형상들은 여행 짐을 등에 멘 채 한 손으로 화로를 덮으려 했다. 얼굴은 없었지만 걸음은 출항 행렬과 같았다.
첫 형상이 사브에게 달려들었다.
사브가 갈고리로 팔을 걸었지만 불길은 쇠를 따라 그의 소매까지 번졌다. 나는 화로 가장자리의 빈 접점에 손을 댔다.
물속 불의 오라는 열보다 행동으로 남아 있었다.
젖은 외투를 벗겨 준 손. 부러진 널빤지를 함께 받친 어깨. 돌아온 사람 몫의 수프를 데우느라 화로에 장작을 더 넣은 결정. 어느 하나도 배가 항구에 들어오기 전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출항 형상은 그 뒤의 기억을 덮으려 했다.
“네아, 불을 잠재우지 마세요!”
이미 침묵 끈을 든 네아가 멈췄다.
“그러면 어떻게 분리하죠?”
“돌아온 뒤 생긴 흔적을 엽니다.”
도린이 세 번째 배의 장면을 가리켰다.
“돛대 이음!”
곡물선이 돌아온 뒤 주민들은 임시 이음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새 홈을 팠고, 갈라진 부분에 항구의 검은 수피를 덧댔다. 도린이 오늘 기억 없이 추가한 홈과 같은 방식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도린의 나무쐐기를 꺼내 화로의 빈 접점에 놓았다.
귀항불이 쐐기 안으로 스며들었다.
도린이 화로 옆의 수리용 망치를 잡았다. 기억 속 목수처럼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들었다. 수면 위에 나타난 곡물선 돛대를 세 번 두드렸다.
물결 속 배에 새 홈이 생겼다.
출항 형상 하나가 가슴부터 갈라졌다. 몸 안에서 불이 아니라 젖은 목분과 따뜻한 수프 냄새가 나왔다.
사브도 갈고리를 고쳐 잡았다. 형상들의 팔을 화로에서 떼어 내고 등대 벽 쪽으로 돌렸다. 벽에는 돌아온 배마다 남긴 수리 못이 박혀 있었다. 불길이 못에 닿을 때마다 각 배의 귀항 뒤 행동이 되살아났다.
네아는 침묵 끈을 형상에 묶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등에 멘 짐의 매듭만 집게로 끊었다. 출항 역할을 나타내던 자루와 상자가 떨어졌다. 짐을 잃은 형상들은 화로를 덮어야 할 이유도 잃었다.
마지막 형상이 오르나 앞에 섰다.
등에 목판 묶음을 멘 모습이었다.
오르나는 피하지 않았다.
“저 기억을 끊으면 출항 명부도 사라집니다.”
“명부가 사람보다 중요합니까?”
네아가 물었다.
“명부가 있어야 모두 살 수 있습니다.”
형상이 두 팔로 오르나를 감쌌다. 불길이 그녀의 외투에 번졌지만 옷은 타지 않았다. 대신 조수추들이 하나씩 바다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오르나의 손에 든 목판을 잡았다.
“지금 놓지 않으면 오르나도 저 형상 안으로 들어갑니다.”
“떠날 역할을 끝내야 합니다.”
“돌아온 역할은 누가 끝냅니까?”
귀항불 속에서 수십 사람이 움직였다. 누군가는 부상자를 안고, 누군가는 깨진 배를 고쳤다. 출항 명부에 적히지 않은 일들이었다.
오르나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나는 목판을 빼앗지 않았다. 그 틈으로 나무쐐기를 밀어 넣었다. 명부의 판들이 완전히 포개지지 않고 한 장씩 벌어졌다.
화염 형상의 몸도 같은 간격으로 갈라졌다.
사브가 갈고리로 마지막 불길을 화로 바깥에 걸었다. 네아가 짐의 매듭을 끊고, 도린이 수리 못을 한 번 더 두드렸다.
출항 형상은 재로 무너졌다.
귀항불은 다시 물속에서 타올랐다.
오르나는 목판을 품에 안았다. 나무쐐기를 빼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출항을 완성하려 합니까?”
내 질문에 오르나는 화로가 아니라 사브를 봤다.
“모렌항이 세워진 첫해에 배 열한 척이 겨울 물살에 부서졌습니다. 두 번째 해에는 식량선이 항로를 잃었고, 세 번째 해에는 아이들을 태운 피난선이 검은 암초로 들어갔죠.”
사브가 불갈고리를 내려놓았다.
“그때는 항로목을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까.”
“항로목의 기억을 더 깊이 받아들인 뒤부터 아무 배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르나는 허리의 조수추 하나를 풀어 바닥에 놓았다. 청동추 한쪽은 닳아 얇았고, 반대편에는 새 금속이 덧대어 있었다.
“이 추의 무게도 에르바 기록에서 배웠습니다. 부두의 높이, 방파 줄의 꼬임, 아이들에게 물을 읽는 법을 가르치는 노래까지요. 이 항구에서 남의 기억이 아닌 걸 찾는 편이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시키는 일은 전부 해야 합니까?”
“필요한 것만 받았다고 어떻게 확신하죠?”
오르나의 질문은 도린이 조선소에서 했던 것과 닮았지만 반대 방향을 향했다. 도린은 남의 기억이 자기 삶을 삼킬까 두려워했고, 오르나는 유산을 거부해 과거의 희생을 배반할까 두려워했다.
“마지막 배가 떠나지 못한 뒤 에르바가 가라앉았습니다. 그 출항만 끝냈다면 사람들이 살았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 실패 위에 항구를 세웠어요.”
네아가 말했다.
“죽은 사람의 실패를 반복한다고 책임을 나누는 건 아닙니다.”
“무명회는 끝내는 일을 책임이라 부르겠죠.”
“끝낼 수 없는 기억을 사람 몸에 묶어 두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오르나가 목판을 더 세게 안았다.
“그 집게로 항로를 끊으면 내일 누가 아이들을 암초에서 데려옵니까?”
네아는 즉시 반박하지 못했다.
사브가 두 사람 사이에 불갈고리를 세웠다.
“귀항불을 숨긴 건 내 잘못이오. 하지만 오르나가 두려워한 것도 거짓은 아니야. 나는 돌아오는 불만 지키면 언젠가 배들이 알아서 올 줄 알았고, 오르나는 출항 순서만 완성하면 모두 살 줄 알았지.”
그는 물속 불을 가리켰다.
“불은 기다리는 일만 기억하고, 명부는 떠나는 일만 기억하오. 둘 다 마을 전체는 아니야.”
오르나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불을 끄지는 않겠습니다.”
“출항도 멈춥니까?”
“아니요.”
그녀는 계단을 올랐다.
“저 불이 돌아온 사람을 기억한다면, 마지막 배가 떠난 뒤에도 남아 있을 겁니다.”
사브가 그녀의 등을 향해 말했다.
“돌아올 사람이 없으면 불도 기다림만 반복해.”
오르나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화로의 수위를 기록한 뒤 등대를 나왔다.
해저의 아침빛은 더 밝아졌지만 수평선에는 여전히 물이 없었다. 도린은 곡물선 기억에서 본 수리 홈을 돛대 하나에서 찾았다. 그 홈 아래로 검은 수피가 이어졌다.
네아가 뿌리 주변의 진흙을 걷어 냈다.
뿌리는 등대에서 숲으로만 뻗지 않았다.
한 갈래는 모렌항 조선소의 기둥으로, 다른 갈래는 주민들의 집 바닥으로 이어졌다. 더 가는 뿌리들은 부두에 누운 현재의 배들 안으로 파고들었다.
도린이 자기 손바닥을 뿌리에 댔다.
조선소 쪽에서 망치 소리가 돌아왔다.
옛 항로목은 현재 모렌항 전체에 접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