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2장 · 2화
2화. 다섯 번 항해한 조선공
잔영기록자 · 한국어
도린은 배를 다섯 척 만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배 다섯 척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 하나씩을 만들고 있었다.
조선소 바닥에는 폭이 넓은 용골과 젖은 밧줄 매듭, 가운데가 접히는 돛대 이음, 한쪽만 새 목재로 덧댄 방향타와 아직 닫히지 않은 함수 결속부가 놓여 있었다. 어느 것도 같은 배에 맞지 않았다. 용골은 얕은 연안선의 것이고 돛대는 그보다 세 배 큰 곡물선의 두께였다. 방향타의 청동 못은 두 세대 전 방식으로 박혀 있었다.
해가 진 뒤 시작한 작업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도린은 쉬지 않았다. 넓은 용골을 다듬을 때는 오른발로 바닥의 가로대를 밀었다. 삼중 인양 매듭을 묶을 때는 왼손을 감싸 쥐며 인상을 찌푸렸다. 손바닥에는 상처가 없었지만 오래 밧줄에 쓸린 사람처럼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돛대 이음을 만들 때는 망치를 왼손에 들었다.
방향타를 덧댈 때는 다시 오른손을 썼다.
한 사람이 몸에 익힌 버릇이 아니었다.
“멈추게 할까요?”
네아가 물었다.
조선소 들보에는 침묵 매듭 네 개가 걸려 있었다. 도린이 출항 충동에 휩쓸리면 즉시 조일 수 있도록 네아가 준비한 것이었다.
“아직 자기 판단으로 고치고 있습니다.”
도린은 곡물선식 돛대 이음에 홈 하나를 더 파고 있었다. 기억 속 설계에는 없는 변경이었다.
“저 홈은 왜 만들죠?”
“빗물이 고이지 않게.”
“기억 속 배에는 없었습니까?”
“그래서 침몰했을지도 모르니까.”
도린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손은 잠시 멈췄다. 자신이 기억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
“다섯 항해를 차례로 말해 주세요.”
도린이 망치를 내려놓았다.
“어제는 조사만 한다고 했잖아요.”
“지금 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을 열어 보겠다는 건 아니고?”
“기억을 꺼낼 필요 없습니다. 손이 만든 것부터 보겠습니다.”
네아가 들보에 기대 팔짱을 꼈다.
“저는 필요하면 열 겁니다.”
도린은 네아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헛웃음을 쳤다.
“둘이 같이 다니는 이유를 알겠군요.”
첫 번째 항해는 소금배였다.
도린은 얕은 모래톱 사이를 지날 때 키를 손으로 당기지 않았다고 했다. 선미에 누워 오른발로 가로대를 밀며 배를 돌렸다. 바람이 약해도 넓은 용골이 조류를 타고 움직였다. 사흘 뒤 같은 항구로 돌아왔고, 소금 자루 하나가 터진 것 말고는 손실이 없었다.
“항구 이름은?”
“모렌.”
“당시 모렌항은 없었습니다.”
도린이 용골을 내려다봤다.
“그럼 에르바였겠죠.”
“기억 속에서 이름을 들었습니까?”
“아니요. 돌아온 곳이 여기라는 걸 알았을 뿐입니다.”
현재의 이름이 옛 장소 위에 덧씌워져 있었다.
두 번째 항해는 안개 속 구조였다.
도린은 종을 세 번 울리고, 조난선 두 척의 선수에 밧줄을 걸어 항구로 끌었다. 삼중 인양 매듭은 한 줄이 끊겨도 나머지 두 줄이 하중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왼손에 밧줄이 감겨 살이 벗겨졌고, 피가 젖은 밧줄을 미끄럽게 만들었다.
도린은 자기 손바닥을 문질렀다.
깨끗한 피부 위로 붉은 줄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아픕니까?”
“아픈 기억이 납니다.”
“지금의 손이 다친 건 아닙니다.”
“알아요.”
도린은 손을 쥐었다.
“알아도 아픈 건 같군요.”
세 번째 항해에서 도린은 곡물선의 목수였다.
파도에 돛대가 부러지자 젖은 목재를 반으로 갈라 접이식 이음을 만들었다. 망치가 손목을 칠 때마다 젖은 목분 냄새가 났다고 했다. 배는 기울었지만 곡물의 절반과 사람 전원을 데리고 돌아왔다.
네 번째는 검은 암초에서 끝났다.
오른쪽 갈비뼈가 부러진 채 방향타를 붙들었고, 차가운 물이 가슴까지 찼다. 도린은 배가 가라앉는 마지막 순간을 말했다. 그런데 방향타를 잡은 손이 어느 쪽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두 손이 다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무슨 뜻입니까?”
“눈은 방향타를 봤는데 통증은 갑판 아래에서 왔습니다. 위와 아래에 동시에 있었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시점이 아니었다. 침몰한 배에 남은 여러 감각이 한 장면으로 눌려 있었다.
다섯 번째 항해에는 바다가 없었다.
사람들은 짐을 싣고 돛을 폈지만 배는 마른 땅 위에 있었다. 선장은 출항 명부를 들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화로지기, 밧줄잡이, 아이를 안는 사람처럼 역할만 확인했다. 마지막 사람이 타자 종이 울렸다.
“그다음은요?”
“떠나야 합니다.”
“어디로?”
도린의 입이 열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이 함수 결속부를 찾았다. 두 청동 턱을 닫으려 했으나 가운데 틈이 맞지 않았다. 다섯 번째 기억에는 목적지도 귀항도 없었다. 출항 직전의 압력만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걸 완성하려는 겁니까?”
“닫히면 알 것 같아서.”
네아가 들보의 매듭을 하나 당겼다.
도린의 손이 멈췄다.
“그건 알아내는 게 아니라 기억이 시키는 동작을 끝내는 겁니다.”
“그럼 어쩌라고요? 손을 잘라 버립니까?”
“필요하면 기억의 연결을 끊습니다.”
“그러면 배 만드는 법도 남습니까?”
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린이 망치를 집어 들었다.
“평생 나무를 깎았습니다. 그중 어디까지가 내 손이고 어디부터 죽은 사람 손인지 구분할 수 있어요?”
나 역시 답을 알지 못했다.
훈련 사고 뒤 나는 겹친 기억의 이음매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닌 감각을 경계했다. 잘못된 기억을 사실로 믿으면 침식이 시작된다. 그 원칙은 아직 옳았다.
하지만 내가 쓰는 호명의 자세도 교관에게 배운 것이었다. 돌을 놓는 순서와 호흡을 세는 법, 라엔이 가르친 접점의 압력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서 왔다. 출처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 생각을 끝내기 전에 조선소 바깥에서 물소리가 났다.
바다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바닥의 톱밥이 물결처럼 움직였다.
다섯 부품 주위로 얇은 물막이 생겼다. 용골 아래에는 얕은 연안이, 매듭 주위에는 안개 낀 수면이, 돛대 이음에는 곡물 자루가 쌓인 갑판이 나타났다. 덧댄 방향타 아래로는 검은 암초가 솟았다.
함수 결속부 앞에는 마른 바다가 펼쳐졌다.
물막에서 사람 형상들이 일어났다.
첫 형상은 오른발로 보이지 않는 키를 밀었다. 두 번째는 왼손에 밧줄을 감았다. 세 번째는 망치를 들었고, 네 번째는 갈비뼈를 누른 채 방향타를 잡았다. 마지막 형상은 얼굴도 손도 없이 출항 명부를 가슴에 붙들고 있었다.
다섯 선원 잔영이 도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도린.”
다섯 입이 같은 이름을 불렀다.
도린이 첫 선원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러자 오른발 아래에 얕은 배의 갑판이 나타났다. 둘째 선원이 손을 당기자 도린의 왼손에는 보이지 않는 밧줄이 감겼다. 셋째의 망치질은 도린의 어깨를 곡물선 돛대 쪽으로 돌렸고, 넷째가 가슴을 움켜쥐자 도린도 숨을 쉬지 못했다.
한 몸이 다섯 배 위에 동시에 서려 했다.
조선소 기둥들이 서로 다른 각도로 기울었다. 한쪽 벽에는 연안의 잔잔한 물이 찰랑였고, 반대편에서는 검은 암초의 파도가 천장까지 솟았다. 곡물 자루가 물막 안에서 굴러 떨어졌고 안개 속 구조선의 종이 세 번 울렸다.
나는 도린의 팔을 잡았다.
손목의 압력이 순간마다 달라졌다. 키잡이의 굵은 관절, 밧줄잡이의 굳은 손바닥, 목수의 망치 자국이 한 피부 위로 지나갔다. 그것들을 도린의 몸에서 억지로 떼어 내려 하자 내 손목 흉터가 저렸다.
훈련 사고 때와 같은 경고였다. 서로 다른 방향을 하나의 대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놓았다.
도린이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왜 놔요?”
“도린을 놓은 게 아닙니다.”
나는 바닥의 다섯 부품을 가리켰다.
“한 사람 안에 다섯 기억이 있다는 생각을 놓았습니다. 저것들은 처음부터 같은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얼굴 없는 선장이 출항 명부를 펼쳤다. 읽을 수 있는 이름은 없었지만 점토에 눌린 손가락 자리와 매듭 구멍이 다섯 선원의 몸을 한 줄로 당겼다. 잔영들은 서로 다른 배를 버리고 도린 뒤에 서려 했다.
명부가 다섯 삶을 한 승선 역할로 압축하고 있었다.
“매듭을 조여요!”
네아가 침묵 끈을 당겼다. 들보의 네 매듭이 닫히며 조선소 소리가 낮아졌다. 첫 선원의 발과 둘째의 왼팔이 흐려졌다.
도린도 무릎을 꿇었다.
“너무 넓게 잡았습니다!”
내가 외쳤다.
침묵은 잔영만이 아니라 도린의 손버릇까지 눌렀다. 도린은 망치 잡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손잡이를 놓쳤다.
네아가 매듭 하나를 풀었다.
선원 잔영들이 다시 다가왔다.
한꺼번에 누를 수 없었다. 다섯 기억을 같은 오염으로 부르면 도린의 현재 기술도 함께 묶였다.
네아는 남은 매듭 세 개를 손에 감은 채 말했다.
“필요한 것만 남긴다는 말은 쉬워요. 어느 감각이 기술이고 어느 감각이 명령인지 어떻게 알죠?”
“쓰임을 물질로 확인합니다.”
“틀리면요?”
“다시 풉니다.”
라엔이라면 불완전한 답이라고 했을 것이다. 네아는 오히려 손의 끈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그럼 제가 너무 넓게 닫으면 말해요.”
“제가 너무 많이 남기면 끊어 주세요.”
우리는 같은 판단을 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잘못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붙들기로 했다.
나는 부품 사이에 섰다.
첫 번째 용골을 발로 눌렀다. 얕은 물의 압력이 발바닥을 밀었다. 도린의 오른발 버릇과 같았지만, 용골 끝에는 도린이 오늘 새로 깎은 빗물 홈이 있었다.
“소금배의 항로는 용골에.”
첫 선원 형상이 길게 눕더니 목재 결 속으로 들어갔다.
둘째는 삼중 매듭으로 보냈다.
“구조선의 손은 매듭에.”
물로 된 왼팔이 밧줄 세 가닥을 타고 흩어졌다.
셋째의 망치는 접이식 돛대 이음으로, 넷째의 갈비뼈 압박은 덧댄 방향타로 돌려보냈다. 각 기억에 맞는 물질이 생기자 형상들은 도린의 몸을 차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섯 번째만 남았다.
얼굴 없는 선장은 함수 결속부를 들어 도린에게 내밀었다. 청동 턱 사이의 틈이 심장처럼 벌어졌다 닫혔다.
“그걸 닫으면 배가 옵니다.”
도린이 말했다.
목소리는 자기 것이었지만 눈은 마른 바다를 보고 있었다.
“어느 배인지 모릅니다.”
“내가 만들어야 할 배요.”
“기억이 만들지 못한 배입니다.”
나는 작업대에서 작은 나무쐐기를 집었다. 도린이 돛대 이음에 빗물 홈을 내고 남은 조각이었다. 다섯 기억 어디에도 없는 현재의 폐기물.
쐐기를 청동 턱 사이에 끼웠다.
결속부가 닫히지 않았다.
선장 잔영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얼굴 없는 머리 안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바닥의 마른 바다가 벽처럼 일어나 나를 덮쳤다.
나는 헤아린의 열두 번째 미래를 떠올렸다. 완벽하게 닫힌 관절은 다른 행동이 들어올 틈을 없앴다. 마레가 준 청동축 하나로 그 틈을 만들었을 때 각인이 흔들렸다.
이번에도 완성하지 않는 것이 해법이었다.
“떠나지 않은 항해는 떠나지 않은 채로 둔다.”
쐐기에 손을 얹었다.
“목적지는 지금 정하지 않는다.”
청동 턱의 압력이 쐐기 양쪽으로 갈라졌다. 선장 잔영의 몸에 틈이 생겼다. 마른 바다가 그 사이로 빠져나가 조선소 바닥의 톱밥으로 돌아갔다.
형상은 무너지기 직전 도린에게 손을 뻗었다.
도린도 손을 들었지만 닿지 않았다.
“저 사람이 나였습니까?”
“도린 안에 남은 기억 중 하나입니다.”
“그럼 나는 누구죠?”
도린이 묻는 동안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말을 골랐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 자기 손으로 여섯 번째 홈을 판 사람. 그러나 그런 문장은 도린의 두려움을 설명할 뿐 없애 주지는 못했다.
“아직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린은 한동안 나를 보다가 바닥의 망치를 주웠다. 이번에는 기억 속 어느 선원과도 다른 자세로 손잡이를 잡았다. 오른손으로 망치를 들고 왼손은 목재에서 멀리 뒀다.
“그럼 이건 닫지 않겠습니다.”
도린은 결속부의 양쪽 턱에 구멍을 하나씩 뚫었다.
“대신 나중에 다른 부품을 붙일 자리를 남기죠.”
여섯 번째 접합을 위한 자리였다.
네아는 들보의 침묵 매듭을 전부 풀었다.
“오늘은 안 자르겠습니다.”
“내일은요?”
도린의 질문에 네아가 무광 집게를 허리에 넣었다.
“내일 생긴 것을 보고 정하죠.”
동이 틀 무렵 다섯 부품을 한 줄로 세웠다.
나는 함수 결속부에 남은 물기를 닦다가 손끝이 걸리는 것을 느꼈다. 청동 표면에 여섯 개의 둥근 압점이 있었다. 가느다란 골이 압점들을 이었고, 한 접점만 바깥쪽으로 열려 있었다.
헤아린 지하의 첫 룬 파편을 둘러쌌던 배열과 같았다.
그 파편은 사라졌다.
그런데 모렌항에서 만든 기억 속 부품에 같은 압력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