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2장 · 1화
1화. 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아침
잔영기록자 · 한국어
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은 처음에 비유처럼 들렸다.
우리가 모렌항을 내려다보는 고갯길에 도착했을 때, 해안에는 물이 없었다. 항구에서 수평선까지 검은 진흙이 이어졌고, 배들은 부두 아래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썰물 때에도 잠기던 암초가 아침 햇빛을 받아 허연 소금 껍질을 드러냈다.
네아가 길가의 풀잎을 뜯어 바람에 놓았다.
풀잎은 바다 쪽으로 날아갔다. 부두의 깃발도 같은 방향으로 펄럭였다. 그런데 해저에 남은 얕은 물줄기는 육지에서 바깥으로 흐르지 않았다. 먼바다에서 더 먼 곳으로 빠져나가듯 수평선 쪽으로만 기울었다.
“썰물이 계속된다는 뜻입니까?”
내가 묻자 네아는 검은 퇴비 주머니를 열어 흙 한 줌을 길 위에 뿌렸다. 가벼운 부스러기는 바람을 따라 날아갔지만, 습기를 머금은 조각들은 제자리에서 떨었다.
“물이 줄어든 게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나가는 방향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고개를 내려갔다.
항구 입구에는 주민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누구도 바다를 보고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집에서 자루와 상자, 접은 그물과 식기를 가져와 길가에 쌓았다. 이사를 준비하는 모습이었지만 행선지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한 노인이 빈 새장을 품에 안고 있었다. 새장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는 깃털도 없었다.
“어느 배를 기다리십니까?”
내 질문에 노인은 눈을 깜박였다.
“세 번째 배.”
“배 이름은요?”
“이름은…….”
노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오른손으로 허공의 난간을 더듬었다.
“난간이 이만큼 높았어. 그날은 비가 왔고. 아내가 갑판 아래서 기침을 했지.”
“실제로 항해하신 적이 있습니까?”
노인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방금 말했잖나.”
옆에 있던 중년 여성이 끼어들었다.
“저분은 모렌항을 떠난 적이 없어요. 다리가 불편해서 평생 등대 창고만 지켰습니다.”
노인은 여성을 노려봤다.
“네가 그때 태어나기나 했어?”
“저는 아저씨 딸이에요.”
노인의 손에서 새장이 떨어졌다.
딸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떠났던 비 오는 날과 평생 머문 항구가 동시에 사실이라고 믿는 얼굴이었다.
비슷한 증언이 항구 곳곳에서 나왔다. 어떤 사람은 붉은 돛의 곡물선을 탔다고 했고, 누군가는 돛이 없는 구조선에서 노를 저었다고 했다. 같은 날 떠났다는 사람들의 하늘과 계절도 달랐다. 겨울의 얼음을 깨고 나갔다는 기억과 여름 폭풍 속에서 항구를 버렸다는 기억이 한 줄의 짐 더미에 섞여 있었다.
모두 떠난 일을 기억했다.
누구에게도 떠난 기록은 없었다.
“잔향 공명이 주민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아요.”
네아는 허리의 무광 금속 집게를 만졌다.
“침묵 매듭을 항구 입구에 치면 출항 충동부터 낮출 수 있습니다.”
나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헤아린에서도 라엔은 모두를 살리기 위해 주민의 행동을 하나의 순서로 고정했다. 지금 모렌항 사람들은 반대로 하나의 떠남에 끌리고 있었다. 행동을 멈추게 하면 당장은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이들을 끌고 가는지 모른 채 기억부터 누르는 일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다.
“먼저 바닥의 방향을 보겠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걸어 나가면요?”
“입구를 닫지 않고 사람별로 붙들 방법을 찾겠습니다.”
네아가 나를 바라봤다.
“라엔과 반대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죠?”
질문이 정확해서 불편했다.
“아닙니다.”
대답은 조금 늦었다.
네아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항구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금속 집게로 돌 틈의 소금 결정을 떼어 냈다.
부두 끝에는 키가 큰 노인이 서 있었다. 흰 수염 끝이 소금에 굳어 있었고, 오른손에는 등대지기가 쓰는 긴 불갈고리가 들려 있었다. 그는 우리가 잔향기록원과 무명회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 혀를 찼다.
“한쪽은 남기려고 하고 한쪽은 지우려고 하니, 둘이 같이 오면 바다가 헷갈리겠군.”
“사브 씨입니까?”
“그 이름을 아직 기억하는 걸 보니 완전히 떠나진 않았나 보오.”
사브는 새벽마다 조수추를 읽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는 전날 해 질 무렵 평소처럼 썰물이 시작됐다고 했다. 자정까지 물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문제는 다음 밀물이었다.
“종은 울렸소. 부표도 안쪽으로 기울었고, 게들이 구멍에서 나왔지. 물이 돌아올 때 생기는 일은 전부 일어났어.”
“물만 오지 않았군요.”
“발소리는 왔소.”
사브가 해저를 가리켰다.
진흙 위에는 수천 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항구에서 바다로 나간 흔적과 바다에서 항구로 돌아온 흔적이 겹쳤다. 이상한 점은 두 방향의 자국이 서로를 밟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길 두 개가 같은 해저를 나눠 쓰듯 정확히 엇갈렸다.
그 사이에는 숲이 자라고 있었다.
난파선의 돛대처럼 보였던 기둥마다 껍질이 있었다. 바닷물에 불은 밧줄 아래로 연둣빛 수피가 갈라졌고, 돛대 꼭대기에서는 작고 두꺼운 잎이 돋았다. 뿌리들은 진흙을 파고 항구 쪽으로 뻗었다.
“어젯밤에는 없었습니다.”
낮은 목소리가 우리 뒤에서 들렸다.
짧은 작업복을 입은 젊은 사람이 부러진 목재를 어깨에 메고 서 있었다. 손가락마다 송진과 청동 가루가 묻어 있었다.
“도린입니다. 조선소에서 일합니다.”
도린은 숲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우리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새벽에 물이 빠졌을 때 처음 나갔습니까?”
“아니요.”
대답이 너무 빨랐다.
“그럼 언제 저 돛대들을 봤죠?”
도린의 오른발이 바닥을 눌렀다. 보이지 않는 키를 미는 버릇 같은 동작이었다.
“다섯 번째 항해에서.”
사브가 한숨을 쉬었다.
“저 아이도 어젯밤부터 저런 말을 하오. 배를 만든 적은 있어도 탄 적은 없는데.”
“다섯 번째라면 앞의 네 항해도 기억합니까?”
도린은 입술을 다물었다.
대답 대신 어깨의 목재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평범한 난간 조각이 아니라 용골의 앞부분이었다. 얕은 물을 가르도록 바닥이 넓고 완만하게 휘어 있었다.
“이걸 왜 만들었습니까?”
“필요해서.”
“어느 배에?”
도린은 해저의 숲을 바라봤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배.”
그 순간 항구의 종이 울렸다.
아무도 줄을 당기지 않았다. 녹슨 종 안쪽에서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며 청동을 쳤다. 한 번뿐인 소리였지만 짐을 싸던 주민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갑니다.”
노인이 빈 새장을 주웠다.
사람들이 해저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네아가 검은 끈을 꺼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아직 한 번만.”
“무엇을 보려고요?”
“발이 아니라 들고 있는 것.”
행렬의 사람들은 떠난 기억에 맞는 짐을 들지 않았다. 노인은 빈 새장, 딸은 아버지의 지팡이, 어부는 오늘 아침 고친 그물, 아이는 깨진 나무 인형을 품고 있었다. 모두 현재 모렌항에서 사용한 물건이었다.
과거의 항로가 발을 끌어도 손은 현재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해저 입구에 납작한 돌 다섯 개를 놓았다. 사람들의 발을 막는 벽이 아니라, 각자 든 물건이 지나갈 자리를 만드는 배열이었다. 첫 돌에는 새장의 휘어진 철사, 둘째에는 지팡이 끝의 흙, 셋째에는 새 그물의 송진을 눌렀다.
“사람마다 닻이 다릅니다.”
네아가 내 뜻을 알아듣고 행렬 사이를 움직였다. 금속 집게로 물건의 마모와 손자국을 찾아 작은 소금 결정에 옮겼다. 결정들을 돌 위에 놓자 해저의 발자국이 흔들렸다.
종이 두 번째로 울렸다.
진흙에서 물이 솟았다.
파도처럼 넓게 일어나지 않았다. 발자국마다 손가락 굵기의 물줄기가 서서 발목을 만들고, 종아리와 무릎을 쌓았다. 수백 개의 사람 하반신이 행렬 사이에서 동시에 걸었다. 물로 된 발은 주민의 발뒤꿈치에 붙어 한 걸음씩 바다 쪽으로 밀었다.
노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기억 속에서는 비 오는 갑판이 펼쳐졌는지, 허공의 난간을 붙잡고 몸을 숙였다. 물의 발이 그를 해저로 끌었다.
나는 빈 새장을 돌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손에 남은 것은 지금의 자리로.”
새장 문이 바람에 흔들렸다. 철사에 남은 노인의 손기름과 딸이 고쳐 묶은 끈이 서로 다른 압력으로 돌을 눌렀다. 물의 발이 한순간 멈췄다.
딸이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이 문은 제가 어제 고쳤어요.”
노인은 새장을 바라봤다.
“어제?”
“아저씨가 손을 찔렀잖아요.”
손가락의 작은 상처가 기억을 되돌렸다. 노인은 물의 발에서 자기 발을 빼냈다.
행렬 뒤쪽에서는 한 여성이 더 빠르게 끌려갔다. 품에 안은 그물추가 진흙을 긁으며 긴 홈을 만들었다. 네아가 검은 끈을 던져 여성의 허리와 부두 말뚝을 이었다. 끈이 팽팽해지는 순간 물의 다리가 둘로 갈라져 네아의 팔까지 타고 올랐다.
네아는 금속 집게로 끈을 자르려 했다.
“자르면 저 사람도 갑니다.”
“그럼 이 공명을 제 쪽으로 옮겨야 해요.”
“옮기지 말고 물건을 보세요.”
여성이 안은 그물추에는 조개껍데기 하나가 박혀 있었다. 오랜 항해에서 닳은 것이 아니라 아직 속살이 마르지 않은 작은 조개였다.
“언제 주웠습니까?”
여성은 걸음을 멈추지 못한 채 대답했다.
“오늘…… 물이 빠지고 나서.”
“옛 배에는 없던 물건입니다. 그 조개를 바닥에 놓으세요.”
여성이 손을 펴자 그물추가 진흙에 박혔다. 젖은 조개가 현재 해저의 압력을 품은 채 물을 끌어당겼다. 여성의 다리를 이루던 물줄기가 그물추 쪽으로 무너졌다.
네아는 허리의 끈을 풀지 않고 느슨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묶는 것보다 기억이 닿지 못하는 오늘을 묶는 편이 낫군요.”
“아직 오늘까지 삼키면 다시 바꿔야 합니다.”
“그때도 먼저 보죠.”
그녀의 대답은 약속이 아니라 방법의 확인이었다.
다른 주민들도 같은 방식으로 붙들어야 했다. 이름이나 직업만으로는 부족했다. 출항 기억도 그 사람의 이름과 손버릇을 알고 있었다. 오직 그 기억 뒤에 새로 생긴 흔적, 옛 항해자가 알 수 없는 오늘의 마모가 필요했다.
나는 행렬 사이를 달렸다.
깨진 인형에는 아이가 오늘 아침 칠한 푸른 안료가 남아 있었다. 지팡이 끝에는 물이 사라진 해저의 검은 진흙이 묻었다. 어부의 그물에는 도린이 방금 교체한 매듭이 있었다.
현재의 흔적이 돌 위에 하나씩 놓일 때마다 물로 된 다리가 무너졌다.
해저의 뿌리들도 움직였다.
가느다란 뿌리 형상들이 진흙에서 몸을 일으켰다. 허리 높이의 작은 수집꾼들은 주민들의 물건에서 떨어진 조각을 주워 돌 사이에 가져왔다. 헤아린 지하에서 폐허를 모으던 수림 잔영과 닮았지만, 이들은 과거의 잔해보다 방금 생긴 나무 부스러기와 새 매듭을 먼저 골랐다.
“현재를 모으고 있어요.”
네아가 말했다.
“저 뿌리들은 출항을 돕는 게 아닙니다.”
돛대 숲의 뿌리가 행렬을 가로질렀다. 물의 발이 뿌리를 밟을 때마다 현재 주민이 남긴 목분과 송진 냄새가 퍼졌다. 사람들은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지막 물줄기가 무너지자 종소리도 멎었다.
해저에는 발자국만 남았다.
나는 숨을 고르며 첫 돌을 주웠다. 라엔이 옆에 있었다면 내가 놓친 방향부터 물었을 것이다. 그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판단을 대신 확인해 줄 목소리가 없다는 허전함이 따라왔다.
네아가 돌의 배열을 살폈다.
“잘했어요.”
“완전히 끊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왜 남겨야 하는지 보고 끊었죠.”
그녀는 칭찬보다 검증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이상하게 그 편이 더 믿을 만했다.
사브는 주민들을 부두 위로 돌려보냈다. 도린만 해저에 남아 물의 발이 사라진 자리를 보고 있었다.
“다섯 번째 배가 저 숲 안에 있습니다.”
“기억 속에서 봤습니까?”
“배가 아니라 떠나야 한다는 감각만 남았습니다.”
도린은 자신이 만든 용골을 들었다.
“오늘 밤까지 나머지를 만들 겁니다. 그래야 어느 배의 기억인지 알 수 있어요.”
나는 말리려 했지만 도린의 손은 출항 잔향에 끌릴 때와 달랐다. 용골의 곡선을 손가락으로 다시 재고, 자기 판단으로 한 부분을 깎아 냈다.
“혼자 만들지 마세요.”
“도와주시게요?”
“관찰하겠습니다.”
도린이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우리는 해저 입구로 돌아갔다. 네아가 마지막 소금 결정을 줍다 멈췄다.
“이것 좀 보세요.”
진흙에는 방금 생긴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주민들의 것보다 조금 좁고, 왼발이 오른발보다 반 치 앞섰다. 발뒤꿈치 바깥부터 딛고 엄지 쪽으로 무게를 옮기는 걸음이었다.
나는 같은 자리 옆에 발을 올렸다.
크기도, 닳은 장화 바닥의 모양도 같았다.
출항 행렬 속에 내 발자국이 바다를 향해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