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1장 · 10화
10화. 세 번 돋는 숲
잔영기록자 · 한국어
마을은 세 방향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공동 화덕에서는 불이, 방파제에서는 물이, 내륙길에서는 뿌리가 밀려들었다. 열한 미래의 폐허가 현실 위로 쏟아지며 같은 집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바꿨다. 한쪽 지붕은 불에 탔고, 다른 쪽은 물속에 잠겼으며, 그 사이로 아직 지어지지 않은 기둥들이 나무처럼 솟았다.
나는 라엔의 팔을 어깨에 걸고 지하 통로를 올랐다.
그는 세 걸음마다 멈췄다.
“파편을 고정해야 해.”
“이미 놓았습니다.”
“아니, 다음 관절을 돌려야 한다.”
“화룡이 무너졌습니다.”
같은 대화가 반복됐다. 라엔은 내 말을 들을 때마다 이해했지만, 몇 걸음 뒤에는 방금 한 행동을 잊었다. 첫 룬 파편을 붙들며 시작된 침식이 최근 기억의 순서를 갉아먹고 있었다.
통로 끝에서 뿌리들이 길을 막았다.
처음 돋은 뿌리는 불에 탔다. 두 번째는 밀려든 바닷물에 꺾였다. 검은 줄기 사이에서 세 번째 새순이 올라왔다. 불에 그을린 수피와 물먹은 나무질을 함께 양분으로 삼았지만, 어느 쪽의 모양도 닮지 않았다.
세 번 돋은 뿌리는 우리 앞에서 갈라져 길을 열었다.
지상에 나오자 두 번째 밀물이 마을을 덮치고 있었다.
미래 방파제는 중앙이 무너졌지만 양쪽 벽이 물을 안으로 휘어 보냈다. 첫 피난선은 북쪽 절벽을 돌아 다시 마을로 들어왔다. 배 앞에는 리브가 서 있었다. 왼손의 수피 붕대에서 가느다란 뿌리가 돛줄까지 이어져 있었다.
“두 번째 배가 아닙니다!”
그가 해안의 주민들에게 외쳤다.
“같은 배가 두 번째 길로 돌아온 겁니다! 아직 남은 사람부터 타세요!”
첫 항해에서는 아이와 다친 사람을 보냈다. 두 번째에는 방파제를 부수던 일꾼과 화덕의 노인들이 탔다. 물의 잔향은 배를 한 번 지나간 것으로 기억해 밀어내려 했지만, 리브는 돌아오는 흐름을 읽어 같은 배에 다른 길을 주었다.
파도 위에 또 하나의 배 형상이 겹쳤다.
전복됐던 네 번째 미래의 피난선이었다. 잔향 속 항해자는 물 아래로 가라앉는 대신 현실의 리브와 같은 방향으로 키를 돌렸다. 두 배가 나란히 파도를 가르자 수로가 넓어졌다.
두 번 흐르는 항해자가 주민들을 해안 밖으로 이끌었다.
마레는 무너진 방파제 위에 서 있었다. 오른팔은 몸에 묶였고 왼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다.
“바깥 벽도 내려야 합니다!”
그녀가 외쳤다.
“저걸 남기면 세 번째 파도가 다시 안으로 꺾여요!”
“세 번째 밀물도 있습니까?”
“몰라요!”
마레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바다가 갈 길을 미리 하나로 정하지 않을 겁니다!”
일꾼들이 마지막 청동축에 밧줄을 걸었다. 라엔이 비틀거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래쪽 결속구를 먼저 빼십시오.”
마레가 그를 노려봤다.
“또 미래에서 본 설계입니까?”
“아니요.”
라엔은 벽의 떨림을 손끝으로 확인했다.
“당신 도면의 하중 순서입니다. 지금 있는 벽을 보고 말하는 겁니다.”
마레는 잠시 망설이다 아래 결속구를 쳤다. 축이 빠지며 높은 방파제의 왼쪽 벽이 바다 쪽으로 넘어갔다. 갇혔던 물이 넓게 퍼졌다.
두 번째 밀물의 높이가 낮아졌다.
“한 번은 빚을 갚았군요.”
마레가 말했다.
“나머지는 재판에서 갚으세요.”
라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걸음 뒤 같은 벽을 보고 다시 결속구를 찾으려 했지만, 내가 그의 손을 잡아 멈췄다.
공동 화덕 쪽에서는 불길이 지붕을 넘었다.
하론이 열린 배기구 앞을 지키고 있었다. 화덕의 불을 완전히 끄면 돌아오는 배가 방향을 잃고, 그대로 두면 지하 불씨가 마을을 태울 상황이었다.
“불을 나눠요!”
내가 외쳤다.
하론은 벽에 박혀 있던 죽은 이들의 물건을 하나씩 꺼냈다. 나무 피리, 깨진 찻잔, 닳은 칼자루. 주민들이 그것을 받아 광장과 해안, 피난 언덕에 작은 화로를 만들었다.
공동 화덕 하나에 모였던 불이 수십 개의 불씨로 갈라졌다.
어느 불도 마을 전체의 닻이 아니었다. 피리는 배가 들어오는 해안의 불을 지켰고, 찻잔은 다친 사람 곁의 물을 데웠다. 칼자루를 받은 어부는 젖은 밧줄을 자르며 작은 화로를 발로 감쌌다.
화덕의 불기둥이 낮아졌다.
“돌아올 자리가 하나일 필요는 없었군.”
하론이 말했다.
내륙길에서는 뿌리가 세 번째로 돋았다.
첫 번째 뿌리들은 미래 폐허를 먹었고, 두 번째 뿌리들은 하론과 리브를 감쌌다. 세 번째 뿌리들은 마을 사람들 사이로 뻗었다. 집을 부수지 않고 기울어진 벽을 받쳤으며, 불길 앞에서는 젖은 수피를 벗고, 물길에서는 속이 빈 줄기로 흐름을 통과시켰다.
뿌리 수집꾼들이 열한 미래의 잔해를 하나씩 운반했다.
녹은 청동은 마레의 무너진 벽 아래로, 젖은 점토판은 네아의 기록 곁으로, 탄 장작은 하론의 작은 화로들 사이로 옮겼다. 실패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행동의 재료가 됐다.
“각인을 풀려면 지하의 중심을 열어야 해요!”
네아가 달려왔다. 품에는 주민들의 증언이 새겨진 점토판이 가득했다.
“파편이 빠진 뒤에도 여섯 관절이 땅의 압력을 한 방향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파편이 빠졌다고요?”
“암반실에 없어요.”
나는 라엔을 보았다.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그는 외투와 주머니를 더듬었다. 검은 파편은 없었다.
“내가…… 놓았지.”
“화룡이 무너질 때까지는 기둥에 있었습니다.”
누군가 우리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사이 파편을 가져갔다.
지금은 찾을 시간이 없었다. 첫 룬 파편 없이도 남은 각인의 압력을 풀어야 했다.
우리는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마레는 벽 해체를 마치고 뒤따랐고, 네아는 점토판을 뿌리 수집꾼들에게 나눠 들게 했다. 하론과 리브는 지상에 남아 불과 피난선을 맡았다.
암반실 중앙의 돌기둥은 비어 있었다.
파편이 박혀 있던 홈 주변으로 여섯 관절이 계속 움직였다. 불, 물과 뿌리를 하나의 원 안으로 끌어당겨 열두 번째 각인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파편이 사라졌는데도 현실은 이미 배운 방향을 반복했다.
“관절을 한꺼번에 끊으면 압력이 폭발합니다.”
마레가 구조를 살폈다.
“순서대로 풀어야 해요.”
라엔이 무릎을 꿇었다.
“내가 만든 배열이다.”
“순서를 기억합니까?”
그는 첫 관절에 손을 댔다가 멈췄다.
“기억하지 못해.”
인정하는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압력은 읽을 수 있다.”
“읽고도 다시 고정하려 들면요?”
“네가 내 손을 멈춰라.”
그는 처음으로 자기 판단을 내게 맡겼다.
네아가 점토판들을 원 바깥에 세웠다. 주민들이 오늘 새로 한 행동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마레는 남은 청동축을 지렛대로 끼웠다. 나는 열한 나이테에서 뻗어 온 뿌리를 각 관절 사이에 나누어 놓았다.
첫 관절은 불을 붙들고 있었다.
라엔이 방향을 읽고, 내가 하론의 흑철 집게로 축을 열었다. 불길이 솟았지만 네아의 기록판 사이로 갈라져 지상의 작은 화로들로 돌아갔다.
두 번째 관절은 물을 붙들었다.
마레가 청동축을 비틀었다. 밀물이 암반실로 쏟아졌고, 나는 리브의 해초 밧줄로 돌아가는 흐름을 불렀다. 물은 첫 피난선이 만든 길을 따라 바다로 빠졌다.
세 번째 관절에는 수림이 엉켜 있었다.
뿌리를 자르지 않았다. 열한 나이테에 감긴 압력을 한 겹씩 풀었다. 첫 실패의 재, 두 번째의 연기, 세 번째의 무너진 돌이 각자의 고리로 돌아갔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관절이 풀리자 라엔이 갑자기 같은 축을 다시 잠그려 했다.
나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지금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그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봤다.
“마을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각인을 풀고 있습니다.”
“놓으면 모두 죽는다.”
기억은 사라져도 두려움은 남아 같은 행동을 반복시켰다.
나는 그를 용서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서를 고치고, 내 기억을 사용하고, 사람들의 미래를 대신 정한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라엔이 기록원의 선임 호명자가 되던 날 세웠다는 본명서약을 말했다.
“나는 라엔.”
그의 손이 멎었다.
“기억을 사람보다 앞세우지 않는다.”
라엔의 입술이 같은 문장을 따라 움직였다.
“나는 라엔. 기억을 사람보다 앞세우지 않는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여전히 방금 푼 관절의 순서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 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았다.
“마지막 축은 내가 뽑겠다.”
“혼자 하지 마세요.”
우리는 함께 여섯 번째 관절을 잡았다.
라엔이 압력의 방향을 읽고, 마레가 청동 지렛대를 받쳤다. 네아는 지워진 기록과 새 증언을 모두 소리 내 읽었다. 나는 불과 물, 뿌리를 하나로 호명하지 않았다.
불에는 타고 끝날 길을 주었다.
물에는 흘러 돌아갈 길을 주었다.
뿌리에는 끝난 것을 먹고 다시 돋을 시간을 주었다.
세 방향이 각자의 자리로 움직였다.
여섯 번째 관절이 빠졌다.
돌기둥의 열린 고리가 산산이 갈라졌다. 암반을 누르던 압력이 풀리며 마을 전체가 크게 숨을 내쉬는 듯 흔들렸다.
지상의 불길이 낮아졌다.
두 번째 밀물이 무너진 벽을 지나 바다로 돌아갔다.
세 번째 뿌리에는 작은 흰 꽃이 피었다.
재난이 끝났다.
라엔은 바닥에 쓰러졌지만 살아 있었다.
해가 뜰 무렵 주민들은 마을로 돌아왔다. 무너진 집도 많았고 공동 화덕의 절반은 타 버렸다. 방파제는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열두 모형이 정한 죽음을 그대로 겪은 사람은 없었다.
마레는 높은 벽을 다시 세우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물이 빠질 수 있는 낮은 돌길과, 필요할 때 주민들이 함께 열 수 있는 수문을 설계했다.
네아는 모든 증언을 보존했다. 라엔의 기록도 불태우지 않았다. 수정 전과 수정 후의 문장을 나란히 두어, 누가 무엇을 지우려 했는지까지 남겼다.
하론과 리브는 공동 화덕을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지 않았다. 해안과 언덕, 마을 중앙에 작은 화로를 나누어 두고 그 사이에 긴 공동 탁자를 만들었다. 죽은 이들의 물건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오늘 사용한 물건도 걸었다.
라엔은 잔향기록원에 스스로 모든 일을 보고했다.
선임 조사관의 계급과 현장 지휘권, 타인의 오라를 호명할 권리가 박탈됐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헤아린에 남아 복구와 기록 정리를 돕게 됐다. 그는 매일 같은 돌을 두 번 옮기려 했고, 그때마다 누군가 방금 한 일을 알려 주었다.
나는 그를 스승이라 불러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어느 날 라엔이 공동 탁자 앞에서 물었다.
“네가 내 서약을 말해 줬나?”
“그렇습니다.”
“그럼 나를 용서한 건가?”
“아닙니다.”
나는 수정된 보고서와 원본을 탁자 위에 나란히 놓았다.
“기억하도록 돕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다릅니다.”
라엔은 오래 두 기록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차이를 잊으면 다시 말해 다오.”
첫 룬 파편은 끝내 찾지 못했다.
파편이 빠진 홈 아래에는 라엔의 것과 다른 압력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의 배열은 모든 힘을 안쪽으로 모았지만, 낯선 자국은 한 접점만 바깥으로 빼냈다. 누군가 열한 미래와 열두 번째 각인이 무너지는 순간을 알고 기다렸다가 파편을 가져간 것이다.
네아는 그 배열을 본 적 있다고 했다.
“첫각인회.”
세계가 갈라지기 전의 룬을 다시 완성하려는 이들. 소문으로만 남은 이름이었다.
파편을 가져간 흔적은 북쪽 수로에서 끊겼다. 그 너머에는 광맥 도시로 이어지는 오래된 길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 추적할 수는 없었다. 헤아린에는 아직 세워야 할 집과 기록해야 할 이름이 많았다.
나는 마을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언덕에 올랐다.
바람은 바다에서 육지로 불었다. 재는 더 이상 바람을 거스르지 않았다. 일부는 공동 화덕의 밭에 섞였고, 일부는 세 번 돋은 숲의 뿌리 아래로 스며들었다.
하론이 붙인 작은 화로들이 해안에서 언덕까지 이어졌다. 리브의 피난선은 두 번째 항해를 마치고 수리를 기다렸다. 마레의 새 수문은 아직 도면 위에 있었고, 네아의 점토판에는 어제와 다른 오늘의 문장이 늘어났다.
정해진 미래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이어 갈 흔적이 있었다.
내 손목의 흉터도 이제 실패의 낙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잘못된 방향을 느끼고도 다시 손을 뻗었던 한 사람의 기록이었다. 다음 호명에서도 나는 규칙을 확인하겠지만, 누구의 말도 질문보다 앞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땅은 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래를 살아갈 사람까지 정해 두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