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룬1장

2화. 살아 있는 자의 장례

하론의 시신은 세 번 나타났다.

첫 번째 시신은 공동 화덕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불에 그을린 얼굴만 하론과 같았고, 나머지는 재와 불길이 빚은 빈 껍질이었다. 나는 형상 곁에 무릎을 꿇었다. 화염은 손을 가까이 대도 뜨겁지 않았지만 손가락 사이의 오래된 흉터가 저렸다.

“만지지 마.”

라엔이 내 어깨를 잡아 세웠다.

“열이 없습니다.”

“그러니 더 위험하지. 타지 않는 불은 다른 것을 먹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는 화덕 벽에서 하론의 낡은 쇠국자를 빼 왔다. 국자 끝으로 형상의 옆구리를 건드리자 검은 불길이 얇은 막처럼 벌어졌다. 그 안에는 뼈도 살도 없었다. 대신 잘게 부서진 장작, 소금 결정, 녹은 지붕 못이 층층이 박혀 있었다.

집이 한 채 불타고 난 뒤에나 남을 것들이 사람의 몸 안에 들어 있었다.

하론이 자기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죽는 게 아니라 화덕이 죽는 건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형상의 가슴에 포개진 두 손이 갑자기 움직였다. 한 손은 목을 움켜쥐었고 다른 손은 바닥을 긁었다. 입이 벌어졌지만 소리는 없었다. 불이 아니라 연기에 질식한 사람의 동작이었다.

리브가 형에게 달려들려 했다. 내가 앞을 막았다.

“저건 형이 아니에요.”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얼굴만 빌린 겁니다.”

내 말은 기록원의 원칙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고 보니 잔인하게 들렸다. 리브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밤새 화덕 밖을 지켰다. 형상이 나타날 때마다 가장 먼저 도망치게 하려 했지만, 하론은 한 번도 문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라엔이 국자를 돌렸다. 시신의 형상이 가슴부터 갈라졌다. 그 안에 갇혀 있던 재가 둥글게 솟더니 화덕 천장의 배기구로 빨려 올라갔다.

“문을 닫아!”

내가 외쳤다. 하론이 화덕 입구의 두꺼운 나무문을 밀어 닫았다. 리브는 바닥의 환기 덮개를 발로 눌렀다. 그러나 천장으로 올라간 재는 굴뚝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검은 구름이 천장 아래에 차곡차곡 쌓였다.

불길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신이 다시 일어났다.

두 번째 형상은 화덕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하론의 얼굴이었다. 다만 죽은 자세가 달랐다. 목을 움켜쥐던 손은 사라졌고, 양팔은 머리 위를 받치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무너진 돌벽이 겹쳐 보였다. 첫 번째 형상의 얼굴은 오른쪽 뺨부터 탔지만, 두 번째 것은 왼쪽 관자놀이부터 검게 갈라졌다.

“같은 잔향이 아닙니다.”

나는 두 형상이 있던 자리를 번갈아 보았다. 첫 번째는 화덕 중심에서 동쪽을 향해 누웠다. 두 번째는 북쪽 벽 아래에서 남쪽을 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하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죽는 장면이 둘이라는 뜻입니다.”

리브가 내 옷깃을 잡았다.

“저건 형이 아니라면서요.”

“하론이 아니라, 하론의 모습을 사용한 두 개의 잔향입니다.”

“다를 게 뭡니까?”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잔향이 미래를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이 기록원의 원칙이었다. 기억은 이미 일어난 일의 마찰이 남긴 흔적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는 마찰이 없다. 아직 타지 않은 것은 재를 남길 수 없다.

그런데 내 앞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죽은 한 사람이 두 번 남아 있었다.

라엔이 리브의 손을 내 옷깃에서 떼어 냈다. 거칠게 밀치지 않았는데도 리브는 두 걸음 물러났다.

“견습에게 화낼 일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에게 화내야 합니까? 재한테? 불한테?”

“원인을 찾는 동안은 누구도 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동안 형이 세 번째로 죽으면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화덕 천장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검은 재가 사람의 팔처럼 길게 늘어나 두 번째 시신의 목을 감쌌다. 형상은 벽 위로 끌려 올라갔다. 돌과 불로 된 등이 천장을 긁으며 산산이 부서졌다. 그 조각들이 바닥에 닿기 전에 가운데로 모였다.

세 번째 하론은 서 있었다.

불길이 허리 아래를 집어삼킨 채, 그는 닫힌 문을 향해 두 손을 뻗고 있었다. 누군가를 먼저 내보내려는 자세였다. 얼굴에는 화상 대신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뾰족한 금속이 오른쪽 가슴을 관통한 모양이었다.

하론은 저도 모르게 같은 자리를 손으로 눌렀다.

“저기 박힌 건 뭐지?”

형상의 가슴 안에서 청동빛이 번뜩였다.

라엔이 대답하기 전에 세 형상이 동시에 되살아났다.

처음 죽은 하론은 바닥의 재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두 번째는 벽의 금 사이로 팔을 내밀었다. 세 번째는 문 앞에서 몸을 돌렸다. 셋의 얼굴이 살아 있는 하론을 향했다.

“불씨에서 떨어지십시오!”

나는 하론에게 달려갔다. 형상들은 그를 에워싼 것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 남아 있는 화덕 불씨를 향해 몸을 겹치려 했다. 하지만 하론이 길을 막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셋이 그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첫 번째 형상이 입을 벌렸다. 검은 연기가 쏟아졌다.

하론이 기침하며 무릎을 꿇었다. 리브가 그를 끌어당겼다. 나는 주머니에서 얇은 운모판 두 장을 꺼내 바닥에 엇갈려 놓았다. 화염을 막는 벽이 아니라, 열과 연기가 지나갈 길을 나누는 접점이었다.

“하론을 동쪽으로!”

리브가 형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그들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첫 번째 형상도 같은 방향으로 꺾였다. 우연이 아니었다. 하론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갈 곳을 먼저 차지하려 했다.

나는 운모판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두 장을 벌렸다.

“숨이 지나간 자리와 불이 지나간 자리를 가른다.”

바닥의 틈으로 찬 공기가 솟았다. 연기가 운모 위에서 둘로 갈라졌다. 하론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첫 번째 형상의 몸은 연기를 잃고 납작해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벽에서 나온 두 번째 형상이 팔을 휘둘렀다. 천장의 돌 하나가 실제로 떨어졌다.

라엔이 지팡이로 받아 냈다. 돌이 지팡이 옆면을 때리며 튕겼다. 그의 손등이 찢어졌다.

“선생님!”

“집중해.”

피가 손가락을 타고 흘렀지만 라엔은 상처를 보지 않았다. 그는 지팡이 끝을 바닥의 젖은 밧줄 아래에 밀어 넣었다.

“셋은 같은 불을 노린다. 하나로 묶으면 안 돼.”

한꺼번에 가두는 편이 쉬웠다. 어젯밤처럼 밧줄로 형상들을 모은 뒤 접점을 끊으면 됐다. 하지만 세 잔향은 서로 다른 죽음을 품고 있었다. 억지로 겹치면 세 방향이 한꺼번에 매개물에 새겨질 수 있었다.

훈련 사고 때 내가 한 실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서로 다른 불길을 하나의 이름으로 불렀다. 모양이 같다는 이유로 본질도 같다고 여겼다. 그 순간 접점이 침식됐고, 동료가 서 있던 방향으로 열이 쏟아졌다.

손끝이 굳었다.

라엔이 피 묻은 손으로 첫 번째 형상을 가리켰다.

“저것은 무엇을 기억하지?”

“연기입니다.”

두 번째.

“붕괴.”

세 번째는 가슴에 청동 조각이 박힌 채 불씨를 향해 달렸다.

“관통…… 아니, 밀려드는 힘입니다.”

“그럼 셋을 따로 보내.”

나는 화덕을 둘러보았다. 연기는 천장으로, 무너지는 돌의 압력은 바닥으로, 밀려드는 힘은 문밖으로 흘려야 했다. 하지만 문밖에는 주민들의 집이 있었다.

“밖으로 보낼 수 없습니다.”

“누가 멀리 보내라 했지?”

라엔이 지팡이로 나무문 아래의 물받이를 두드렸다. 홈에는 리브가 부어 둔 바닷물이 남아 있었다. 파도가 아니어도 물은 밀려온 힘을 받아 흩을 수 있었다.

나는 운모판 하나를 세웠다. 다른 하나는 바닥에 눕혔다. 젖은 밧줄을 풀어 문턱의 물받이까지 이었다. 세 갈래 길이 생겼다.

첫 번째 형상의 연기가 운모의 매끈한 면을 타고 천장으로 올랐다. 두 번째 형상이 뻗은 팔은 눕힌 판에 닿자 아래로 꺾였다. 돌이 부서지는 힘이 바닥 전체로 퍼지며 발바닥을 울렸다.

세 번째 형상만 길을 거부했다.

그것은 하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의 청동 파편이 안쪽에서 더 깊이 박혔다. 하론이 같은 곳을 움켜쥐며 몸을 접었다. 상처는 없는데도 입술이 파래졌다.

“연결돼 있습니다!”

“무엇으로?”

나는 형상과 하론 사이를 살폈다. 눈에 보이는 불길은 없었다. 대신 화덕 바닥의 재 위에 같은 발자국이 두 겹으로 찍혀 있었다. 하론이 조금 전 옮긴 발과 형상의 발이 완전히 포개졌다.

“동작입니다. 저 잔향은 하론이 문을 막았던 순간을 붙잡고 있어요.”

“난 그런 적 없소!” 하론이 기침 사이로 외쳤다.

“알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 말을 삼켰다.

나는 하론 앞에 섰다.

“두 손을 내리세요.”

“뭐?”

“저 형상과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문을 보지 말고 불을 보세요.”

하론은 머뭇거렸다. 세 번째 형상은 두 손을 뻗은 채 문을 등지고 있었다. 하론이 몸을 돌리면 자신이 지켜 온 불을 등지게 된다.

리브가 그의 손을 잡았다.

“형, 나 봐.”

하론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먼저 손을 내렸다. 이어서 문에서 한 발 물러났다.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화덕 한가운데의 불씨를 바라봤다.

겹쳐 있던 발자국이 어긋났다.

나는 젖은 밧줄의 끝을 불렀다. 바닷물이 가느다란 막으로 솟아 세 번째 형상의 가슴을 감쌌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만 쏠리던 압력이 물받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청동 파편이 형상의 몸에서 밀려 나와 바닥을 굴렀다.

맑고 무거운 소리가 났다.

세 형상이 동시에 무너졌다.

연기는 천장 밖으로 빠져나갔고, 벽 사이의 불길은 바닥 틈으로 가라앉았다. 문 앞의 형상은 검은 장막처럼 넓게 펴졌다가 재가 되어 내려앉았다. 재는 이번에도 하론을 피해 흘렀다.

화덕 안에 남은 것은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리브가 형의 얼굴과 팔을 더듬었다.

“괜찮아?”

“네가 그렇게 만지면 없던 상처도 생기겠다.”

하론이 밀어내려 했지만 힘이 없었다. 리브는 손을 놓지 않았다.

라엔은 손등의 상처를 천으로 감았다. 내가 대신 묶으려 하자 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 형상의 차이를 기록해.”

“치료가 먼저입니다.”

“얕은 상처야.”

“기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라엔의 눈이 잠시 좁아졌다. 그는 내게 붕대를 건넸다. 내가 매듭을 묶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돌을 받아 낸 충격 때문이라 생각했다.

“선생님, 잔향은 과거를 남기는 것 아닙니까?”

“원칙상 그렇지.”

“하론은 저런 일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 형상은 죽은 장소도, 상처도 달랐습니다.”

“기억은 정확한 기록이 아니야. 여러 사람의 공포가 한 얼굴에 달라붙었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하론의 죽음을 두려워해서요?”

“공동 화덕을 지키는 사람이니까. 화덕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그를 떠올리겠지.”

설명은 가능했다. 주민들의 두려움이 불의 오라에 스며들고, 화덕에 가장 강하게 연결된 하론의 얼굴을 빌렸을 수 있다. 첫 번째 형상은 화재, 두 번째는 붕괴, 세 번째는 바다에서 밀려온 무언가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세 장면은 그렇게 구체적이었을까.

첫 번째 형상의 손톱 아래에는 숯가루가 끼어 있었다. 두 번째의 어깨에는 현재 화덕 벽에 없는 균열이 지나갔다. 세 번째의 가슴에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청동 파편이 박혀 있었다.

공포는 방향을 만들 수 있어도 아직 생기지 않은 흠집까지 알지 못한다.

“회상 잡음일 가능성이 크다.”

라엔이 매듭을 살피며 말했다.

“여러 잔향이 겹칠 때 인과가 뒤섞여 보이는 현상이지. 오늘 본 것만으로 미래라 단정하면 안 된다.”

“미래라는 말을 먼저 하셨네요.”

그는 나를 보았다.

내가 무례했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라엔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옅게 웃었다.

“좋은 지적이야. 나도 방금 본 것에 끌려갔군.”

그가 자신의 판단을 고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나는 안도했다. 의심을 허락받은 기분이었다.

날이 밝자 소문은 이미 마을 전체에 퍼져 있었다. 주민들은 공동 화덕 앞에 모였지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론이 문밖으로 나오자 몇몇은 다친 곳을 물었고, 몇몇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화덕을 닫아야 해.”

어젯밤 우리를 맞았던 노인이 말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하론을 다른 곳에 머물게 하고.”

“내가 병이라도 옮긴다는 거요?”

“그런 뜻이 아니라, 자네 곁에 저것들이 모이잖나.”

“불 곁에 불이 모이지, 그럼 물방앗간에 모이겠소?”

하론의 농담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젊은 어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형님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애들이 밤새 울었습니다. 화덕 벽에서 죽은 사람들 물건도 떼어 냅시다. 뭐가 저것들을 부르는지 모르잖습니까.”

하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벽의 물건들은 장식이 아니었다. 죽은 이를 계속 곁에 붙들어 두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마을에서 무엇을 했는지 잊지 않기 위한 자리였다. 피리는 아이들을 재웠고, 칼자루는 그물을 고쳤으며, 깨진 잔은 폭풍이 지난 날 이웃에게 따뜻한 물을 건넸다.

“벽은 건드리지 마.”

리브가 하론 앞에 섰다.

“그리고 형도 어디 안 갑니다.”

“리브.”

“형이 화덕을 비우면 다들 안심할 것 같아? 어제 바다에 나간 배가 돌아왔을 때 불이 꺼져 있으면, 그때는 누굴 탓할 건데?”

노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라엔이 주민들 사이로 나섰다.

“화덕과 하론은 격리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다만 오늘부터 불을 두 곳으로 나누고, 야간에는 기록원이 지키겠습니다. 물건도 그대로 둡니다. 매개물을 성급히 옮기면 잔향의 길이 민가로 바뀔 수 있습니다.”

기록원의 권위가 논쟁을 눌렀다. 주민들은 만족하지 않았지만 하나둘 흩어졌다. 어떤 이는 하론에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끝내 그의 눈을 피했다.

하론은 문 안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살아 있는 장례가 죽은 뒤 장례보다 시끄럽군.”

리브가 욕설을 삼켰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청동 파편을 찾았다. 하지만 세 번째 형상이 무너진 자리에는 재뿐이었다.

“분명 소리가 났습니다.”

“잔향 안의 물질까지 실제였다는 보장은 없어.” 라엔이 말했다. “감각도 기억에 끌려갈 수 있으니까.”

나는 재를 손가락으로 헤쳤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라엔의 설명대로라면 맑은 금속음도 잔향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때 리브가 내 곁에 쪼그려 앉았다.

“찾는 게 이런 겁니까?”

그의 손바닥 위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청동 조각이 놓여 있었다.

표면은 소금에 오래 삭은 듯 푸르게 변색되어 있었다. 한쪽은 둥근 관절처럼 파였고 다른 쪽에는 굵은 압력 자국이 세 줄 나 있었다. 화덕의 어느 도구와도 닮지 않았다.

“어디서 났습니까?”

“어제 아침에 바다에서 주웠습니다.”

“왜 이제야 보여 주죠?”

리브는 라엔을 한번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기록원 양반이 오기 전에는 그냥 배 부품인 줄 알았으니까.”

“어느 배의 부품입니까?”

“그게 이상합니다.”

그는 조각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청동은 차가웠다. 너무 오래 물속에 있었던 것처럼, 손의 열을 빠르게 빼앗았다.

“헤아린에는 저런 걸 쓰는 배가 없습니다.”

“그럼 어디서 주웠습니까?”

리브가 화덕 너머, 아직 아침 안개에 가려진 바다를 가리켰다.

“물이 빠지면 잠깐 드러나는 옛길이 있어요. 거기 끝에 없는 벽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없는 벽?”

“파도가 오면 보이고, 파도가 물러나면 사라집니다.”

리브는 내 손안의 청동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저건 그 벽에서 떨어졌습니다.”